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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 먹는 음식은 왜 짜장면이었을까? 잊혀진 청요리집

by 중계붕어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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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졸업식을 하고 나면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경우들이 있다. 보통 '저렴했던 외식'이라는 이유로 짜장면이 선호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짜장면은 고급식당에서 나오는 요리였다. 청요리집이란 명칭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기름진 음식을 먹기 어려웠던 시절 청요리집의 기름진 짜장면은 그야말로 '부의 상징'이었다.

한국 진출 100년이 넘은 짜장면

짜장면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인천 지역에서 산둥지방 출신 화교들이 만들며 탄생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은 최초의 짜장면 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식당의 정식 개업이 1905년이다.

짜장면의 원조, 공화춘 - 인천 차이나타운. 지금은 짜장면 박물관이다.

짜장면이라는 메뉴는 원래 인천 항구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의 식사였다. 산둥반도의 가정식 메뉴였다는 짜장면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하여 중국의 요리와는 달라졌다고 한다. 엄밀하게 중국과 한국의 짜장면은 사촌지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00년 전 처음 들어온 짜장면은 인천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메뉴였지만, 청요리집이라고 불렸던 중국집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사실 지금도 이런 '청요리집'의 느낌이 있는 고급 중국 식당들이 각 지역마다 하나쯤은 있다. 청요리집들은 보통 배달이 없고, 회전테이블이 있는 고급 식당이며 그 동네에서 역사가 꽤나 긴 편이다.

 

1980년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배달 중국음식점들이 보통 우리가 아는 '중국집'이라는 식당들이다. 그리고 이 집들이 '저렴한 짜장면'을 만든 곳들이기도 하다. 춘장은 된장과도 유사한 향이 있어서 이를 볶은 짜장면은 한국사람의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었고, 캐러멜로 단맛을 강화하여 국민요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K-짜장면

결국 청요리집이라 불리던 고급 중식당들은 그 수가 적어지고, 저렴한 중국집들이 짜장면을 중심으로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집이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춘장을 비롯한 중식재료의 대량생산이 한 몫 했다. 지금이야 식재료상을 가면 식당용 소스가 다양하게 있지만, 1950년대 영화식품이 대량생산을 시작한 '사자표 춘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영화식품의 사자표 춘장

중국집의 번성 - 공장형 식재료의 등장

청요리집이 쇠락하고, 일반적인 중국집이 많아진 데에는 춘장의 역할이 크다. 춘장은 원래 중식당에서 직접 담가야 했던 중요한 식재료다. 춘장 자체가 식당의 실력이자 중요한 레시피였던 셈이다.

 

이미 영화식품의 공장형 춘장이 지배하고 있던 2000년대 초 인천 '태화원'의 손덕준 주방장은 춘장부터 복각하여 짜장면을 만들어서 판매해 보았다. 원래 춘장은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되는 재료였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기 어려웠다고 한다.

 

손덕준 주방장은 결국 '번거롭다' 라는 말은 남기고 판매를 포기하였다. 이미 공장형 춘장으로 저렴해진 짜장면을 바꾸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시점에 다시 시도한다면 괜찮은 이슈가 될지도 모르겠다.

 

1950년부터 춘장을 생산한 영화식품의 시장 점유율은 약 90%에 달한다. 사실상 춘장 독점기업이다. 현재 영화식품은 중화요리 재료 등을 만드는 업체로 성장하였으며, 비상장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식품의 재무제표 (2021년)

재무제표를 확인해보면 연간 매출은 약 630억 원(2021년 재무제표 기준)에 이른다. 물론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점유율 90%에 육박하는 식재료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은 조금 작게 느껴진다.

 

춘장 외에도 공장형으로 바뀐 메뉴는 바로 '만두'다. 원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공장형 만두는 저렴한 가격으로 중국집의 대표 '서비스' 품목이 되고 말았다. 이연복 셰프 역시 손덕준 주방장처럼 직접 만드는 만두를 포기하기도 했다.

 

공장형 식재료들은 중국집을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저렴한 대중식당으로 변화시켜 버렸다. 그렇게 청요리집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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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함을 느낄 수 있었던 청요리집

청요리라는 말은 근대 한국문학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염상섭의 <삼대>에서도 청요리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으며 도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중국요리는 일반 서민들이 먹기 힘든 별미였고, 도박판 같은 사치스러운 자리에 어울리던 요리들이다.

 

졸업식의 기억에 짜장면이 함께하는 이유는 중국요리가 주는 기름진 느낌 때문이다. 주로 돼지기름을 볶아서 만드는 요리방식 때문에 중국요리에는 기름진 맛이 가득했다. 결국 중국집은 '부유함'을 맛으로 느끼는 공간이었다.

 

지금이야 다양한 중국요리가 있을 뿐 아니라, 기름진 음식들도 쉽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짜장면은 달고 기름진 맛이라 이를 무시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에게 짜장면은 특별한 날 사치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추억이다.

 

졸업식날이나 이삿날에 누군가 짜장면을 먹자고 한다면 한번 쯤은 즐기는 것도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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