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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선전의 달인들 - 요제프 괴벨스, 엄창록, 리 애트워터

by 중계붕어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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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비방하기 위해 대중에게 호도하는 방식인 흑색선전은 사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언변이 중요했던 공화정 시대(그리스, 로마)에도 흑색선전은 유효했고, 왕의 카리스마가 지배하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난에 민감한 인간의 특성상, 흑색선전이라는 것은 언제나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셈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흑색선전은 더욱 큰 힘을 발휘하였다. 바로 대중에게 동시에 정보를 뿌리는 매스미디어 즉, '방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흑색선전의 달인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 히틀러의 참모

수 많은 영화나 소설을 통해 끔찍한 빌런으로 묘사되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다.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으로 엄밀하게 '흑색선전'의 달인이었다기보다는 대중연설에 탁월한 면모를 보였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다 보면 나치에 열광하는 대중의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열광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괴벨스라고 알려져 있다. 소련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모든 독일 국민들을 미쳐버리게 만들었던 대중 연설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나는 묻겠다.
여러분은 어떤 고난이 있어도 총통 각하를 믿고 따르겠는가?
여러분은 가장 힘든 부담을 기꺼이 짊어질 것인가?
- 2차대전 총력전 연설 중

 

마치 사이비 교주가 말하는 내용 같다. 사실 이 내용은 별게 아니지만, 그는 이 총력전 연설에서 적절한 제스처와 억양, 어조를 연습한 한편, 충직한 당원과 배우들을 동원하여 스스로 감동받아 박수를 치는 연출을 함께 구성한다.

 

그의 연설이 끝날 때 쯤, 당시 베를린 체육궁전에 모인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라디오로 이 연설을 듣고 있던 모든 독일 국민들은 전쟁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다짐하며 총력전을 준비하게 된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괴벨스는 그의 대중연설 능력을 활용하여 유대인 학살이라는 악행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그의 선전, 선동은 이후 정치와 언론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20세기 최초의 프로파간다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창록 - 김대중의 측근으로 시작하여 박정희의 승리를 이끌다.

독일에 괴벨스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엄창록이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심리전 담당 하사관이었다. 그는 1960년대부터 김대중의 비서가 되어 여러 전략을 쏟아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정확한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전쟁 당시 군인이었다는 점에서 1930년대 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창록은 '선거판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박정희 정권 당시 박정희 정권을 견제하려는 각종 선거에서 야당의 승리에 공을 세우며 선거판을 좌지우지했던 인물이다. 실제로도 박정희는 엄창록의 활약으로 김대중과 야당의 인기가 높아지자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이 인물의 이야기는 최근 설경구, 이선균 주연의 '킹메이커'라는 영화로 다뤄지기도 했다.

엄창록의 비화를 다룬 영화 킹메이커

이 영화에서 이선균은 서창대라는 인물을 연기하는데, 이 인물의 모티브가 바로 엄창록이다. 약간의 극화가 가미되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엄창록의 전략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내용들이 나온다.

 

엄창록의 대표적인 전략으로 추정되는 것은 바로 '지역감정'이다. 엄창록과 김대중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결별한 뒤 박정희(중앙정보부)에게 영입되어 만든 전략으로 추정된다. 전라도 지역과 경상도 지역의 인구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상도 지역에 지역색을 이용한 위협을 가하면 똘똘 뭉치게 되었던 것이다.

 

독재정권 타도나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을 '먹고 사는 문제'로 바꿔버린 사례다. 물론 엄창록이 이 지역감정을 설계했다는 추정은 많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가 김대중과 함께 선거를 치를 때 사용하던 전략들과 결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의 전략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각종 기록에 남아있는 엄창록이 구사했던 전략은 다음과 같다.

  • 상대 운동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피를 보아서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자극하기.
  • 선거 운동원으로 중요한 유권자의 집에 방문할 때, 세수를 좀 하겠다면서 화장실에 가서 고급 비누를 놓고 나오기.
  • 상대당이 제공한 금품이나 물품을 회수해버리기.
  • 상대의 운동원이라고 하면서 쪼잔하게 금품을 제공하기

지금은 대부분 불법이지만 교묘하게 유권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입소문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쁜 내용들이 전달되도록 하는 점조직 운영의 귀재였다고 한다.  

리 애트워터(Lee Atwater) - 우선 때린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책략가가 있었다. 바로 리 애트워터다. 그는 1998년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의 승리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지 부시는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이란 콘트라 사건'으로 인해 공화당 이미지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태에서 대통령 경선에 나선다. 하지만 리 애트워터는 공화당 경선 후보들이었던 밥 돌, 잭 캠프, 팻 로버트 등 모든 후보에게 각종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하며 모두 침몰시킨다. 그렇게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위를 확보한 조지 부시는 당시 민주당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하던 두카키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두카키스에 대한 대부분의 흑색선전은 애트워터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 두카키스의 아내가 성조기를 불태웠다는 루머를 퍼뜨려서, 항상 두카키스가 '아니라고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이 덕분에 두카키스와 불타는 성조기의 이미지가 겹쳐버리게 되었다. 필사적인 부정이 오히려 각인되는 꼴을 만든 셈이다.
  • 조지 부시와 두카키스의 토론회에서 '당신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해도 그 범인에 대한 사형을 반대하겠는가?'라고 묻자, 두카키스는 '그래도 사형제를 반대할 것이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부시는 '가족애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두카키스에 대한 지지율을 꺾어버렸다.
  • 두카키스가 메사추세츠 주지사로 재직하던 중 가장 호평받았던 정책은 바로 주말 죄수 석방제도였다. 모범적인 죄수들에게 주말 동안 집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하여, 석방 후 사회 재정착률을 높이고 수감자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을 하도록 유도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윌리 호튼'이라는 수감자가 휴가기간 동안 다시 강간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애트워터는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우리 일상생활에 무서운 범죄자들이 함께 한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두카키스의 업적은 바로 그를 공격하는 칼이 되고 말았다.

리 애트워터의 작품 - 회전문 교도소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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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애트워터 역시 괴벨스나 엄창록과 같이 네거티브 전략에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 위 영상은 정치학, 언론학 관련 전공수업에서도 다룰 정도로 유명한 영상이다. 특히 회전문이라는 이미지로 범죄자가 교도소에 들렀다 바로 나오는 것처럼 묘사하여 불안감을 자극한 것으로 유명하다.

흑색선전의 영향

괴벨스, 엄창록, 리 애트워터 이들이 던진 흑색선전 전략들은 이제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선거전략으로 암암리에 사용되고 있다.

 

괴벨스가 했다는 말로 알려져 있는 '선동은 한 줄만 있으면 되지만, 반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반박이 다 끝났을 때에는 이미 대중들에게 잊힌다'라는 것처럼 정치판에 난무하는 흑색선전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변하게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나마 균형 잡힌 여러 보도를 접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유튜브의 시대에는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자신이 관심을 가진 내용만을 더 깊게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즉, 지금 상태에서 흑색선전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져가는 셈이다. 지난 글에 다루었던 사이비 종교의 '터널효과'와 같은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지난 글 보기 - 사이비 종교는 어떻게 심리조작을 하는 것일까?

 

사이비 종교는 어떻게 심리조작을 하는 것일까?

사이비 종교라는 단어는 영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이비(似而非)'라는 한자 단어다. 같을 사(似), 또 이(而), 아닐 비(非)라는 세 글자로, "겉모습으로는 유사하지만 또한 전혀 아니다"라는

hellyeah.tistory.com

과연 지금 시대에 흑색선전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엄밀하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흑색선전의 달인들이었던 괴벨스, 엄창록, 애트워터의 전략들을 보고 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참고로 괴벨스와 엄창록 그리고 애트워터의 말년은 다들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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