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끈 기업인 중, 이른바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킨 사람으로는 현대의 정주영을 꼽는다. 정주영 회장(1915~2001)은 농사를 지으며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말을 뒤로하고 가출하여 혈혈단신으로 지금의 현대를 키워냈다.
막노동으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말부터 자동차 수리업체를 운영하다 건설사를 차려서 미군 관련 사업을 따내며 건설업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자식들 뿐만 아니라, 형제들 역시 함께 관련 사업을 운영하며 '범현대가'를 일궈내었다.
정주영 일가의 특징은 이름에 '영'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정주영과 항렬이 같은 형제들이고, 정주영의 자녀들과 조카들은 '몽'자를 쓰고 있다. 그다음 손자들은 '선'자를 쓰고 있어서 대략 '삼촌-조카'관계를 알 수 있다.
정주영의 형제와 자녀들이 워낙 방대한 관계로, 그의 형제들의 일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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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형제들
정주영에게는 6명의 형제가 있었다. 그 중에서 함께 현대를 키워나갔던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가장 많이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남 정인영 - 한라그룹(HL그룹)
정주영의 첫째 동생으로, 초창기 정주영이 세운 현대건설을 키우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공병부대 통역장교로 활동하면서 형의 회사에 일감을 연결해 주어 현대건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정인영은 독자적으로 '현대양행'을 설립하고, 1970년대 정주영의 중동진출에 반대하며 별개로 독립하기 시작하여 한라건설, 한라자원, 만도기계, 인천조선(한라중공업), 한라시멘트 등을 설립하며 한라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한라그룹은 IMF시기 부채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 이후 차남 정몽원에게 남은 회사를 물려주었고, 2006년 사망하였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승진시킨다는 이념을 투철하여, 그의 회사에서는 경력직 대리가 5년만에 상무로 진급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삼남 정순영 - 현대시멘트, 성우그룹
정주영의 둘째 동생으로, 현대자동차공업에 입사하여 활동하다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현대시멘트 사장을 역임한 뒤, 현대종합금속을 설립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성우그룹'을 만들기 시작한다. 1987년 자동차 부품회사인 성우오토모티브를 세웠고, 이 회사가 현재 성우홀딩스로 지주사가 되어있다. 성우그룹에서는 현재의 '웰리힐리파크'를 강원도 횡성에 만들어서 운영하였다.
현재 현대성우그룹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쇠락하고 있는 상태다. 웰리힐리파크도 신안그룹으로 넘겨진 상태고, 정순영의 손자들이 마약사고 등을 내며 꽤나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장녀 정희영 - 남편 김영주 서한그룹
정주영의 셋째이자 유일한 여동생인 정희영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였던 소박한 분이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현대건설이 1965년 해외사업을 수주하였을 때, 태국 공사현장으로 가서 4년 동안 직원들의 식사를 손수 챙겼다고 한다. 이 당시, 현대건설 직원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2년간 정희영씨의 밥을 먹으며 일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남편 김영주는 정주영이 자동차수리업체를 운영하던 당시 단골로 지내다가 회사에 합류하여 함께 회사를 키워나갔다고 한다. 자동차 수리에 능해 정주영이 직접 '기계박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울산지역을 총괄하여 '울산의 대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김영주는 단순히 매제가 아닌 충실한 동료로 인정을 받아, 다른 형제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 그의 회사는 서한그룹과 후성그룹으로 각각 장남과 차남에게 이어지고 있으며, 현대 계열사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남 정세영 - 현대자동차, 현대산업개발
정주영의 넷째 동생인 정세영은 현대 내부에서 끝까지 정주영을 도왔던 인물이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을 이끌어갔을 뿐만 아니라, 정주영이 정치활동을 위해 회장에서 물러났을 때 그룹 총괄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정세영은 현대자동차의 포니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워, '포니정'이라 불렸다. 현대자동차의 개인 대주주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회사를 이끌어왔던 경력으로 자신의 아들인 정몽규에게 현대자동차를 물려주려고 했지만 정주영의 한 마디로 실패한다. 정주영은 자신의 장남인 정몽구에게 현대자동차를 넘기고, 현대산업개발의 지분을 정세영과 정몽규에게 넘겨주었다.
정세영의 아들인 정몽규가 현재 현대산업개발을 이어받았지만, '아시아나 항공 인수불발' 사건과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건'으로 회장직에서 사퇴한 상태다.
오남 정신영 - 동아일보 기자
정주영의 형제 중, 유일하게 기업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서울대 법대와 동아일보 기자라는 이력을 지닌 인텔리였지만 독일 유학 도중 장폐색증으로 사망하였다.
정주영의 권유로 독일 유학을 하면서 통신원으로도 활동하며 해외 소식을 전달하였다. 1962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기 직전 장폐색증으로 수술 중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할 당시, 정주영이 매우 슬퍼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인사동의 관훈클럽에는 '정신영'을 기리는 정주영과 정신영의 상이 있다. 정주영은 1977년 동생 정신영을 위해 관훈클럽에 1억 원을 기탁하였고, 이는 언론인들의 연구활동 지원비로 '정신영기금'이라고 운영되고 있다.
정신영의 자녀인 정몽혁은 현대계열사인 현대코퍼레이션의 회장을 지내고 있다.
육남 정상영 - KCC그룹
정주영의 형제 중 막내인 정상영은 정주영과 21세의 나이차이로, 자신의 조카인 정몽구와도 2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친구처럼 자라왔다고 한다.
정주영 후광으로 금강스레트공업을 설립하고, 계열사인 고려화학과 합병하여 금강고려라는 이름에서 현재의 KCC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조카인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투신자살하고, 그의 부인인 현정은이 현대그룹 회장이 되었을 당시 지주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매수하면서 '현대그룹은 정 씨가 경영을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농구를 매우 좋아하여 농구단 운영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팬들 역시 그의 전폭적인 지원을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KCC는 현재 그의 아들들에게 승계되어 운영되고 있다.
정주영과 그의 형제들은 대한민국 중공업과 건설을 이끌어온 축이라 볼 수 있다. 막내인 정상영이 2021년 사망하면서, 정주영의 형제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며 현대 1세대는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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