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11대, 12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최근 서울의 봄에 나타나는 모습 때문에 전두환 씨의 행적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자녀들의 근황은 예전에 소개한 바가 있으나, 그의 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전두환(1931~2021) - 대한민국 11대, 12대 대통령
김영삼 정부(문민정부) 당시 반란죄, 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모두 상실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며 사면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상실된 것과 달리 경호가 계속되어 사망 시까지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1931년생인 전두환은 1950년 한국전쟁(6.25)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하였으며,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다. 전시 상황에서 약식교육을 받았던 그 이전 선배들보다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첫 번째 기수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전쟁 휴전 이후 1955년 육군소위로 임관하며 본격적으로 군 간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정식 육사 교육'을 받은 첫 번째 기수라는 자부심이 컸고, 또한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운영하며 자신의 라인들을 굳혀두었다. 그래서 자신의 선배들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파워가 막강했었다.
전두환은 소위 임관 뒤, 당시 우수자원에게만 허용되었던 미 육군에서의 교육과정을 수료하였고, 이를 통해 미군 간부들과도 관계를 쌓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돌아와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에 참여하면서 핵심지위인 정보직 자리를 꿰차게 된다. 군사정권 당시 사회 인사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중앙정보부에서 핵심 직책을 맡은 뒤, 계속하여 승승장구하며 최종적으로 중장(★★★)까지 진급하게 된다. (그의 최종 계급은 대장(★★★★)이지만, 마지막 별은 정권을 잡은 뒤 자신이 스스로 진급시켰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엘리트 군인이기도 했지만, 군 내부에서 이끌던 자신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이용하여 끝장을 보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전두환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살해사건이 벌어지자마자 보안사령관의 직함으로 해당 사건의 수사본부장을 맡는다. 이 상태로 약 두 달간을 고민하다 수사본부장의 지위와 하나회 후배들을 이용하여 1979년 12월 12일 군사쿠데타를 벌여서 군을 장악한다.
당시 최규하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사실상 꼭두각시였던 셈. 전두환은 군을 장악한 뒤 약 5개월 뒤 1980년 5월 17일 헌정을 중단시킨다. 이 당시 대학 학생회장단은 서울역에 모여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이 시위를 임시로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서울역 회군'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하지만 광주에서는 전남대학교가 계속 시위를 진행하였다. 이 시위에 대한 진압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다.
전두환은 이로부터 약 3개월 뒤, 군에서 전역하고 1980년 8월 무렵 최규하의 자리를 뺏은 뒤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 이후 1988년까지 대통령을 연임한다. 그리고 대통령 선출제도를 직선제로 바꾸고, 자신의 동료인 노태우에게 다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고 노후를 보냈다.
전두환의 형제들 - 11남매로 이루어진 대가족
전두환은 그 당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가족처럼 10명의 형제가 있었다. 전두환은 그 중에 일곱째로 태어났다. 이 형제들 중 첫째와 둘째 그리고 열째인 전열환과 전규곤 그리고 전석환은 셋 다 어린 나이에 사고 등으로 인해 안타깝게 사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두환은 실질적으로 집안의 차남 역할을 했다고 기록상 알려져 있다.
나머지 형제들은 대부분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어 있었다.
첫째 - 전열환(남): 어린 나이에 사망
둘째 - 전규곤(남): 어린 나이에 사망
셋째 - 전홍렬(여): 특별한 정보 없음
넷째 - 전명렬(여): 홍준표의 비리수사 단계에서 거론된 바 있음
정치인 홍준표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청탁관련 비리사건을 수사하던 중 전명렬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높은 사람을 통해 그린벨트 해제, 골재채취 등의 허가권을 쉽게 받도록 해주겠다는 식의 사기 사건이었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연관된 피의자들을 소환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전명렬이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부에서도 전명렬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직접 소환에 부담을 느끼고 홍준표에게 허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째 - 전선학(여): 특별한 정보 없음
여섯째 - 전기환(남): 2019년 사망
6.25 당시 육군 중사로 참전하고, 1959년 경기도경 순경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67년 9월에 서울 용산경찰서 근무를 시작한다. 전두환이 장군으로 진급하게 되자 1974년 스스로 경찰일을 그만두고 나온다.
그는 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잠시 농사꾼으로 살았다. 전두환은 12.12로 권력을 잡자마자 자신의 형에게 서울 반포의 대형아파트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전기환은 이때부터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특히 경찰 근무 이력을 바탕으로 경찰 인사에 많은 개입을 하였고, 대표적으로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벌이게 된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끝난 뒤, 해당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은 1980년대 청와대와 서울시를 이용하여 기존 노량진시장의 자본을 협박하여 운영권을 강탈했던 사건이다.
여덟째 - 전학렬(여)
아들인 김영도 대립개발 회장이 청탁개입 및 수뢰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아홉째 - 전점학(여)
무학으로 지내다 1993년 60세의 나이로 검정고시로 교과과정을 마친 뒤 방송통신대학교에 합격하였다. 아직 자신의 오빠가 대통령인 1987년 부터 수도학원 한글반에 등록해 한글 공부부터 시작하여 1991년 대입검정고시 당시 최고령으로 합격을 하였다. 현재 대구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째 - 전석환(남): 어린 나이에 사망
막내- 전경환(남): 2021년 사망
전두환 곁에서 가장 크게 비리활동을 벌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현재 용인대로 개편한 대한유도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갑종간부후보생 출신(지금의 ROTC와 유사한 제도) 장교로 복무하였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으며, 1968년 제대 후 삼성그룹 비서실에 특채로 근무하였다.
이후 1977년부터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였으며, 10.26 당시 당직자로 자신의 형에게 사태를 빠르게 알려서 전두환의 정권 장악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새마을운동협회 중앙본부 사무총장', '새마을운동협회 중앙본부 회장' 등 새마을운동협회에서 승승장구한다.
지금은 새마을운동협회가 별거 아닌 단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7-80년 당시 꽤나 막강한 이권이 오갔던 단체다. 이 협회의 운영으로 전경환이 횡령한 금액은 73억 6천만 원(현재로는 수 백억에 이르는 돈이다)이다. 그는 1988년 횡령금액을 비롯하여 새마을신문사의 10억 탈세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989년 징역 7년, 벌금 22억, 추징금 9억 원의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대통령 특별감형으로 1991년 가석방되었고 1992년 사면되었다.
이후에는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다 무산되기도 하였고, 2000년에는 건설업체 회장으로부터 20억을 빌리고 소송까지 갔다가 패소하였다. 또한 2004년에는 1억 달러 투자유치를 해준다는 명목 하에 7억 원을 수뢰하기도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역외 탈세까지 했다는 의혹이 있으며, 전두환의 비자금을 관리한 사람 중 하나란 말이 있다.
전두환의 자녀들이 궁금하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 자녀들의 현재 생활 - 전재국, 전재용, 전재만, 전효성
전두환 일가와 관련있는 유명인들: 유시민, 홍준표, 지강헌
전두환은 대통령 재임 시 가족과 친인척들이 수많은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인 이순자 여사의 가족들도 여러 비리에 연루되었고, 그의 사촌형제들도 여러 비리에 연루되었지만, 직계 형제가 아니므로 제외하였다.
전두환의 형제들을 조사하면서 몇몇 유명인들의 이름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유시민, 홍준표, 그리고 지강헌이다.
유시민: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
전두환이 1980년 최규하 대통령을 몰아내던 당시 서울역에 모여있던 대학생들이 시위를 계속하지 않고, 해산결정을 내렸던 '서울역 회군'사건 당시, 끝까지 남아서 투쟁하자고 주장했던 인물이었다.
유시민은 결국 모두의 결정에 따라 시위대를 해산하기로 결정했지만, 며칠 뒤 광주에서의 진압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전두환에 대한 분노와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고 보인다.
홍준표: 1980년대 초임검사로 5 공화국 비리를 캐면서 승진
1980년대 신입 검사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 홍준표는 5 공화국 관련 비리를 캐면서 자리를 잡았다.
위에 언급된 '전기환의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과 전명렬의 비리 관련 사실, 그리고 전학렬의 아들 '김영도의 사기'가 모두 홍준표의 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적당히 덮으라는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계속 진행하여 좌천되었다가, 90년대 슬롯머신의 대부라 불린 '정덕진'을 구속하며 이름을 알리고 정치계로 입문하게 된다.
전명렬을 수사하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전두환 일가의 비리에 더욱 많은 신경을 쏟은 인물이기도 하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인질극 범죄자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인질극을 벌였던 범죄자 지강헌이 있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잡범'에 가까웠는데, 11범의 상습절도로 17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던 범죄자다.
그는 교도소 이감 중 탈주하여 서울 시내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던 영화가 2006년 이성재, 최민수 주연의 홀리데이라는 영화다.
범죄자인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이야기한 이유는 잡범인 자신이 17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있는 반면, 76억을 횡령한 전경환이 2년 만에 가석방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