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무너지는 나라는 어디? 21세기 국가 안보 변화
AI가 모든 직업들을 삼켜버리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과연 AI로 인해 무너지는 나라는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나라일까요?
AI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글을 먼저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AI의 기본 작동원리 - 과연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국제 사회의 시작 - 노예무역
AI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국제사회(International System)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보통 국제사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국경을 맞대지 않은 나라들과의 관계가 국가의 존망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UN이나 그 전신인 국제연합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던 19세기말, 20세기 초를 국제사회의 시작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로 국제사회가 시작된 것은 이미 4세기 무렵 유럽으로 이동했던 훈족의 대이동과 같은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각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까운 나라가 아니라, 일면식도 없던 외부 국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민족의 이동 같은 경우에는 사실 단발적인 사건입니다. 일시적으로 '국제사회'를 형성하지만 사실 천재지변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외국으로부터의 영향도 일시적이고, 이에 대한 대비도 보험처럼 아주 조금만 투입하는 수준에 불과하죠. 외국의 영향을 고려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이 될 때 비로소 '국제사회'에 접어든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국제사회의 형성은 '대항해시대'라고 불리는 15세기 무렵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세기부터는 유럽의 왕조들이 적당히 나라를 나눠먹고서 안정을 얻은 뒤, 해외로 고개를 돌려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유럽은 아시아의 향신료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들을 가져와서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노예를 유럽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의 해양강국들은 이때 항로의 운항권을 점령하면서 패권국가로 자리하게 됩니다.

아시아의 향료 가격이 직접적으로 유럽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유럽사회의 귀금속이 아시아에 유입이 되면서 영향을 주는 '국제사회' 시스템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옆나라가 아니라 먼 외국의 사정이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때 주목할만한 점은 향료와 같은 재화의 이동뿐만 아니라, 노예라는 노동력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인권의 문제를 뒤로하고 노예라는 제도를 살펴보자면, '저렴한 노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16세기 이전 동서양 모두에는 신분제를 이용한 노동력 착취가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도 농노라는 형태고, 아시아에서도 노비라는 형태죠. 농노나 노비들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등의 근거를 내세우며 '노예는 아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노동력 착취가 이루어졌던 사실은 분명합니다.
노예무역제도 자체를 들여다보면,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약 1000만 명이 넘는 인원을 미국과 유럽으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강제로 납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프리카에서도 노예상이 타 부족민을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죠. 냉정한 현실을 보자면, 아프리카 내부에서도 누군가는 사람을 팔면서 부를 쌓은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항해시대의 경제력은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고부가가치 상품과 아프리카에서 들어오는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상품에서 만들어집니다. 패권은 이 루트를 장악한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양분하고 있었습니다.
노예제도를 멈춘 것은 증기기관?
노동의 시대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예들이 저렴하게 일을 하고, 지주들은 차곡차곡 부를 쌓으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노예는 기계가 아니죠. 결국 사람 수가 늘어나는 만큼 먹는 식품과, 자는 공간과 같은 필수적인 유지비가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더 많은 부를 쌓기 위해서는 결국 땅이라는 생산수단을 늘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땅이 무한정 늘어날 수도 없고, 노동력은 점차 과잉이 되어갑니다. 어찌 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죠.
18세기부터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한 증기기관은 이 노예무역에 기반한 생산 방식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기계'라는 노동력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증기기관은 대규모의 노동력을 단 번에 해결하는 힘을 지닙니다.
증기기관이 현대식 기계의 단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노동시장은 급변합니다. 사람이 1000번 움직여서 옮길 짐을 기차 한 칸에 담아서 훨씬 많이 가져갈 수 있게 변화한 것이죠. 이런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비싸지만, 압도적인 노동력 차이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딱히 많은 숫자의 노예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노예의 인권도 이야기하게 되고, 노예를 사용하지 않을 '당위성'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벌어진 남북전쟁 역시 이런 결과물이죠. 노동집약적인 남부는 노예가 필요했지만, 이를 벗어나기 시작한 북부는 노예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처럼 당시 실제 사회에서는 충돌이 벌어지지만, 결국 노예는 점차 퇴출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항로를 장악했던 스페인의 패권도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항로를 관리하던 이익이 점점 상실되는 것이죠. 안정적인 육로 운송이 보다 확대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증기기관을 개발한 영국은 스페인과 다른 방식으로 식민지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스페인의 식민지는 사람을 직접 두고 운영해야 했던 방식입니다. 그래서 남미의 도시들을 '스페인 식의 도시'로 개발하고 정착시키죠. 하지만 영국의 방식은 필요한 물자만 가져오는 형태로 변화합니다. 철도와 같은 기간산업을 정착시키는 방식입니다.
기계를 사용하면서는 규격이라는 것도 중요해집니다. 고대시대에 전국적인 세금수취를 편하게 하기 위해 '도량형을 통일'하는 것과 마찬가지 역할입니다. 이 덕분에 시스테믹한 과학의 발전도 이루어집니다.
컴퓨터의 시대에 벌어지는 인력전쟁
기계 시대의 노동력은 과거보다 조금 더 지식이 필요합니다. 기계 원리에 대해 알아야 하고, 이를 다룰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준화된 교육이라는 체계도 필요하게 됩니다.
기계가 100명분의 노동력을 대체하지만, 기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기계를 통해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스케줄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영역도 필요하죠.
과거에는 당근을 키우기 위해서는 당근만 이해하면 되는 직관적인 시대였다면, 당근을 재배하고 판매할 시장까지 생각해야 하는 식으로, 고차원적인 추상적 사고가 필요하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미국은 증기기관에서 시작된 기계를 활용하던 중 2차 대전이라는 '기회'를 맞이합니다. 미국의 가장 큰 경쟁집단인 유럽과 소련이 순식간에 전쟁으로 몰락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미국은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고, 덩달아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무한 경쟁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 미국은 한 가지 국가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바로 기계운용에 필수적인 에너지, 석유를 장악하는 것입니다.
유럽은 과거 노예를 데려오던 아프리카 식민지를 그냥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으로만 가지고 있다가, 이에 대한 운영여력이 되지 않자 모두 독립시키고 버렸습니다. 미국은 이런 비용부담을 인지하기 때문에 석유 생산국을 굳이 '식민지'화 시키지 않고, 소련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며 달러로 장악합니다. 닉슨대통령 당시 키신저 외무장관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페트로달러'를 만들어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미국은 이와 함께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석유를 안정적으로 수입하면서 공장을 통해 생산한 제품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죠. 냉전이 끝난 상태에서 중국의 개방 역시 엄청난 운으로 작용합니다. 중국을 통해 더욱 저렴하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열립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시작된 개인 컴퓨터(PC)의 시대는 미국의 호황기에 또 다른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시 외국의 하청 생산공장의 역할을 하던 중, IMF 이후 김대중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IT 업계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IT가 차세대 먹거리라는 점을 인식하고, 닷컴버블기를 맞이합니다. 소프트웨어 위주로 주력산업이 점차 재편되죠. 공장식 생산은 외부에서 만들고, 실리콘밸리를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을 하는 형태고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인력 교육도 진행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를 충당하기 위해 인도와 아시아의 국가들에서 우수한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수급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해당 국가의 최고 엘리트 계층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국과 고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양국의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민간외교단' 역할도 겸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인력의 이동은 최근 큰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생산공장을 하던 중국이 엄청난 성장을 하였고, 미국 내의 인구가 먹고살기 위한 공장은 해외로 이전된 상태에서 기존과 같은 소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진 미국의 정치적 위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기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를 거치며 자국 우선주의로 표출되었고, 이민 정책은 빠르게 변화합니다. 해외 엘리트 인력들의 미국 유입이 급속도로 막히기 시작하죠.
과거의 잣대로 본다면 실리콘밸리의 혁신 동력이 떨어지고 미국 IT 산업에 큰 타격이 왔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인력 수급 제한에 따른 문제점은 현재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AI(인공지능)'의 발전 때문입니다.
과거 수많은 아시아 엔지니어들이 밤낮으로 매달려야 했던 코딩, 디버깅, 시스템 관리 업무를 이제는 AI가 순식간에, 그리고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엘리트 인력이 들어오지 못해 생긴 거대한 공백을 AI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력이 완벽하게 메우고 있는 셈입니다.
AI로 인해 무너지는 국제사회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 즉 '무너지기 가장 쉬운 나라'는 어디일까요? 역설적이게도 미국에 엘리트 인력을 보내며 자국의 부와 IT 생태계를 발전시켜 왔던 인도와 같은 국가들로 전망됩니다.
그동안 인도는 수많은 두뇌들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그들이 보내오는 막대한 달러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국가적 이익을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AI가 이들의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해 나간다면, '인력 수출'이라는 거대한 경제 톱니바퀴가 멈춰버리게 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굳이 복잡한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적 차이를 감수하며 외국 인력을 데려올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AI 시대의 도래는 국가 생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입니다. 다만, 그로 인해 세계의 패권도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예나 증기기관, 석유 모두 현대의 AI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노동의 의미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생산력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노예무역을 통해 패권을 차지했던 스페인도 노예의 의미가 없어지자 패권을 상실했습니다. 증기기관을 통해 패권을 차지했던 영국도 석유를 차지한 미국에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구요.
현대 사회에서는 어쩌면 AI가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 패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 농경 시대나 초기 산업 시대에는 많은 인구가 곧 국력이었고 든든한 생산 기반이었습니다. 하지만 AI가 발전하게 되면 조금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구가 적은, 즉 '국가의 유지비가 적게 드는' 국가의 생존이 훨씬 유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에이, 그래도 인구 숫자가 중요하지 않나?
맞는 말입니다. 겨우 100년 전, 사람이 직접 칼을 들고 싸웠던 구시대 전쟁도 이제는 미사일과 드론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필수적인 인구수는 분명 있지만, 그게 과거 기준으로 계산되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국가 인프라 구축에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부양인구의 숫자가 적은 도시국가 형태의 나라들이 AI시대에 안정적인 국가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점에서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이 이런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 나라들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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