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돈으로 환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치는 결국 가격으로 확인된다.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 작품이 수천 억 원을 호가하기도 하고,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이른바 양판소 작품이라 몇 천 원에 판매되기도 한다. 한 번쯤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뱅크시(Banksy)는 현대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림 하나에 보통 3-4천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뱅크시의 작품과 정체에 대해 알아보자.
뱅크시의 홈페이지 바로가기 - banksy.co.uk
가장 비싸게 거래 된 쓰레기(?)
뱅크시의 작품 중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바로 '풍선과 함께 있는 소녀(Girl with balloon)'다. 이 작품은 2018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104만 2천 파운드(한화로 당시 약 15억) 원에 낙찰되었다. 예술품 경매에서 15억 원이 엄청난 금액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낙찰이 되는 순간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면 어떨까?
실제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작품의 낙찰선언을 하자마자 액자에 설치되어 있던 자동 분쇄기가 작동하며 작품 절반이 파쇄되어 버렸다. 이 당시 영상을 보면 경매장 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헉'하는 숨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이 작품의 분쇄는 본인이 기획한 것이었다. 액자에 미리 세절기를 장치해 놓고 작품을 경매에 올린 것이다.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는 "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파괴하고 싶은 욕구는 곧, 창조하고 싶은 욕구다)"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소개했다. 이 파괴의 퍼포먼스까지 온전히 뱅크시의 예술이었던 셈이다.
뱅크시는 작품을 완전히 파괴하려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계 오작동으로 절반만 파쇄되었는데, 이 소동 덕분에 작품은 더욱 유명해지고 말았다. 이 말은 곧, 작품의 가격이 오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낙찰자 역시 이를 감안하여 훼손된 상태 그대로 작품을 인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작품명은 'Girls with Balloon'에서 'Love is in the Bin(사랑은 쓰레기통 속에)'라고 바뀌었다.
그 유명세 덕분에 뱅크시가 벽체에 그림을 그린 이동주택의 가격은 500배가 올랐다. 2013년 길거리에서 정체를 숨기고 60달러에 판매했던 그림은 7점이 우연하게 팔려나갔고, 해당 그림들은 최소 3만 달러를 호가한다고 한다. 스프레이로 빠르게 그리는 스텐실 그래피티가 왜 이리 비싸게 팔리는 것일까?
뱅크시의 작품세계
작품이 박살났는데도 가치가 오르고, 스텐실 그라피티로 슥슥 그리기만 했는데도 몇 천만 원을 호가한다? 이게 가능한 몇 안 되는 작가가 바로 뱅크시다. 뱅크시와 동일하게 자본주의, 권위주의, 전쟁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아 제작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뱅크시의 작품은 이슈를 몰고 다닌다.
뱅크시는 2005년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 자신이 그려놓은 돌을 숨겨놓거나 그림을 몰래 걸어놓았다. '쇼핑카트를 끌고 있는 사람' 그림을 그려놓은 돌을 석기시대 유물 사이에 올려놓는 식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이게 잘못된 줄 모르고 박물관에 한참 방치되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 허영심을 비판하려던 것이라 알려져 있다.
뱅크시는 권위적인 것들을 파괴하고 훼손하면서 신랄한 비판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황당한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에도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뱅크시의 행위에 대해서는 'Banksy-ed'라는 동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풍선 소녀'의 그림을 파괴하는 퍼포먼스에서도 외국 신문기사에는 Banksy-ed라고 표현하였다.
뱅크시의 홈페이지에는 저작권과 관련하여 간단한 코멘트만 있다. '개인이 비상업적으로 갖다가 쓰는 경우'에는 맘대로 해도 되지만, 상업적인 용도로는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보통 길거리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에 작품들이 존재한다. 개인이 소유하고 가치를 올리는 행위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셈. 박살내버린 '풍선 소녀' 퍼포먼스도 이런 정신에서 기인한다.
꿈과 환상의 나라인 '디즈니랜드(Disney Land)'를 뒤집은 절망의 나라 '디즈멀랜드(Dismaland)' 역시 이와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수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과 협업하여 탄생시킨 괴상한 테마파크였다.
뱅크시의 기획 테마파크(?) Dismaland - https://youtu.be/V2NG-MgHqEk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은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메세지에 더욱 열광한다. 뱅크시의 작품들은 이런 점을 굉장히 잘 활용한다. 뱅크시의 의도가 '이딴 거에 열광하지 마!'라고 외쳤지만, 대중은 그 작품에 되려 열광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비틀린 작품들이 결국 '돈'이 되는 이유는 뱅크시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어그로' 덕분이다. 확실히 화제를 만들고, 그 화제를 추진력삼아 결국 작품들이 비싸게 되어버린다. 돈으로 점철된 예술계의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비싼 작품들이 되어버린 셈이다. 마치 스트릿 의류브랜드 '슈프림(Supreme)'을 보는 듯하다.
현재에도 다양한 작품시도를 하고 있으며, Exit Through the Gift Shop이라는 영화를 통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뱅크시의 정체는? 개인 혹은 단체?
사실 뱅크시와 비슷한 예술 작가들은 많다. 그런데 뱅크시의 작품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뱅크시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가디언지와 최초로 매체 인터뷰를 진행하긴 했지만, 그 사람이 뱅크시가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글에서도 뱅크시에 대해서 '그' 또는 '그녀'와 같은 대명사로 지칭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알려지지 않은 정체 때문이다.
뱅크시라고 추정되는 개인은 몇 사람으로 좁혀지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 출신의 예술가 몇 명이 거론되기도 하고, 음악가가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목받은 개인 예술가들은 대부분 해당 사실을 부정하거나, 완곡하게 넘긴다.
그래서 현재 뱅크시가 개인이 아닌 '단체'라는 추론도 있다. 우선 작품들이 넓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작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도 그렇다. 보통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들을 발표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또한, 그라피티가 불법인 국가에서 개인이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한 번도 붙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뱅크시의 작품이 유명해진 상황에서도 이를 제작하는 과정이 유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개인이 작업하는 모습으로 사람들 눈에 띈 적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즉, 여러 사람이 모여서 제작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뱅크시의 작품들은 제작 후 SNS 등을 통해 발표하기 때문에 작업과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뱅크시가 단체일 수 있다는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끝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현대 예술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인 뱅크시는 과연 개인일까 단체일까? 그리고 정체가 밝혀진다면 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기업가치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뱅크시라는 기업이 있다고 할 때, 과연 그 가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보고 투자한다고 시뮬레이션해보면 되기 때문이다. 이슈성이 중요했다라면, 뱅크시 정체가 탄로 날 때 전부 팔아버려야 할 것이고, 뱅크시의 메시지가 중요했다면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가치투자'를 하면 될 것이다. 기업의 밸류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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