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1위 은행인 UBS가 위기에 빠진 CS를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 CS 주주들은 22.48주 당 UBS 1주를 배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로 인하여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위기설이 솔솔 나오면서 경제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알아보자.
세계적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S)는 UBS가 인수한다. 특이한 형태로.
세계적인 투자은행 크레딧 스위스는 UBS가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 합병비율은 22.48 : 1이다. CS 주주들이 지니고 있는 주식 22주당 UBS 주식 1주로 교환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위험한 은행이 인수합병되면서 안전하게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AT1(Additional Tier 1)이라는 신종자본증권을 '상각' 즉, 없애버린다는 의외의 수가 나왔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러지 않는다.
AT1과 같은 신종자본증권은 돈을 가지고 장사하는 '금융사'에서 발행하는 특수한 형태의 채권이다. 분명 돈을 빌려오고, 이에 대해 이자를 갚는 채권이라는 것에는 동일하지만, '돈을 빌려주는' 장사를 하는 금융업에서는 이 채권 자체가 자본으로 인식된다. 특수 채권에 해당한다. 티어 1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높은 등급의 채권이다.
예를 들어서, CS의 투자 운용실력이 너무나도 좋아서 연 수익률 20%에 이른다고 해보자. 오늘 현재 CS의 자본 100만 달러를 다 투자하여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 앉아서 1년 뒤 20만 달러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야 할까? 돈을 빌려와서 자기가 투자한 다음에 이자를 돌려주고, 수익금을 쌓는 게 훨씬 이익일 것이다.
그래서 CS는 AT1을 발행한다. 금융사가 사용하는 '대출'인 셈이다. 이자를 10% 준다고 하더라도, 투자수익률이 20%이므로 10% 이익이 난다. CS는 이런 증권을 열심히 발행하고, 수익금으로 이자를 갚으면서 투자의 볼륨을 키워간다.
이런 상황에서 CS라는 회사의 재무상태를 뜯어본다고 할 때, AT1의 발행금액은 채무일까? 자본일까?
직접 투자에 쓰이는 돈이기 때문에 '자본'이 되는 것임에도 분명하지만, 채권자에게 이자를 내고 있기 때문에 '채무'인 것도 분명하다. AT1의 지위가 이처럼 독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신종자본증권 AT1을 상각처리 한다는 상황은 대체 무슨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일까?
회사가 망할 때, 회사를 팔아치운 돈은 누구한테 가야 맞을까?
이번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일반적으로 회사가 망한다고 할 때, 회사의 자산들을 모두 매각하면 그 돈을 누구한테 줘야할까?
회사를 매각한 대금은 가장 먼저 '미납된 세금'과 '근로자 급여'에 사용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회사로부터 돈을 받아가야 할 '채권자들'에게 넘어간다. 이런 돈을 모두 갚고서도 남아있는 금액은 주주들이 나눠가지고 정말 해산되는 것이 바로 해체의 수순이다. 즉, 회사를 매각하는 경우, 권리의 측면에서 채권자가 주주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AT1의 독특한 지위에 따르자면, AT1은 회사의 자본금이 되지만, 채권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해당 증권을 들고 있는 투자자 역시 독특한 지위를 얻게 된다. AT1을 자본금으로 볼 경우에는 자본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주주'가 될 수 있지만, 채권으로 볼 경우에는 '채권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AT1을 상각처리 해버리는 것은 이를 '자본'이 아닌 '채권'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간단히 채권자들에게 '배 째라'를 시전 한 셈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채권자'의 돈을 먼저 갚아준 것이 아니라, '주주'를 먼저 챙긴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표현하자면, 전셋집이 매각되었는데 세입자의 전세금은 없는 것으로 처리해 버리고, 집주인에게 돈을 주고 매매를 마무리한 셈이다. 왜 AT1의 채권자들은 돈을 받지 못하고 끝나버렸을까? 여기서부터는 정황에 입각한 소설이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복잡한 사정? UBS의 선택
CS는 큰 규모의 투자은행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근 막대한 투자손실로 인해 주가는 계속 하향세였다. 아마 재무제표를 열어보아도 분명 좋지 않았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 상태에서 CS가 발행한 AT1의 가격이나 규모도 이를 매입한 은행들이 서로 풋옵션을 행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신종자본증권을 산 기관들도 CS가 불안할 경우에는 풋옵션을 행사하여 미리 팔거나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과 풋옵션에 대한 예전 글 읽어보기 - 신종자본증권에서 콜옵션과 풋옵션의 의미는?
UBS도 이러한 상황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주식의 비율로 22.48:1로 합병하는 것은 CS를 완전히 흡수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아마도 AT1을 인수하게 될 경우에는 지분구조가 흔들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UBS가 CS를 흡수하는 데 사용하기로 한 비용과 스위스 정부의 지원 등이 있었겠지만, 이 비용이 채권 상환에 먼저 사용되어 버린다면 UBS는 CS를 흡수도 하지 못하고 채권만 변제해 주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만큼 CS의 투자손실(결손금)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채권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위스 정부의 허가 하에 AT1 채권은 모두 무시해 버린다는 결정을 내리고, 주주 간의 합병을 진행한 것이라 보인다.
그렇다면 우려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여기까지 볼 때, 분명히 특수한 상황으로 UBS와 CS가 합병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AT1이 무시된 상황 자체가 약간의 시장 불안을 가져왔다. 우려의 포인트들과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우려의 포인트 1. 다른 은행들이 발행한 AT1도 불안하다.
AT1은 크레디트 스위스만 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은행들도 발행했다. '채권'이라는 형태의 상품이기 때문에 기관들이 발행하고, 구입해 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아하니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AT1'을 그냥 '상각'처리해버린다는 불안함이 생겼다. 이 때문에 다른 은행들이 발행한 AT1도 위기 상황에서 휴지조각이 되지 않을까? 결국 이런 생각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미리 AT1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번 CS의 경우에도 아예 은행이 인수합병되는 특수상황에서나 발생한 케이스다. 투자상품으로써 AT1의 매력도가 낮아질 수는 있지만, 뱅크런을 유발할 정도까지는 어렵다고 보인다. 어쩌면 AT1을 변화시킨 금융채 상품이 등장할 수 있겠다.
우려의 포인트 2. CS가 발행한 AT1의 규모로 인한 문제
어찌 보면, 이 부분이 더 우려가 될 수도 있다. 상각처리 되었다는 CS의 AT1을 들고 있는 여러 금융사들의 연쇄작용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동안 CS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미리 풋옵션으로 처리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고, 스위스 정부가 지급보증을 한 금액들로 일부 충당이 될 예정이기 때문에 대단히 큰 위기로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UBS인수 과정에서 나타난 모습은 사실 아이러니 하게도 '채권자'가 아닌 '투자자'를 보호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는 Tax-Payers를 보호하고, 예금자를 보호하지만, 투자자를 보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자본주의다'라고 한 발언과 정반대가 되어버렸다.
현재 CS의 신종자본증권과 같이 복잡한 사례로 인해 시장 공포감이 늘어가고 있는 듯 하지만, 우려할 만한 사태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CS는 현재 '파산'을 한 상태가 아니다. 정말 해체된 것도 아니고, 파산의 위기 속에 더 큰 은행에 인수합병된 상태다. 시장의 공포를 제대로 꿰뚫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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