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역의 부동산 개발을 할 때, 주변 지역을 모두 매입하여 개발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기존의 집주인들은 적당한 가격에 호응하여 매각하지만, 끝까지 남아서 버티고서 더 비싼 보상금을 받는 경우를 알 박기라고 표현한다. 개발사들도 한복판에 매입하지 못한 부동산이 남아버릴 경우, 프로젝트가 어그러질 수 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매입하게 된다. 물론 알 박기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주식에도 알박기가 있다. 바로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하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버티는 것이다. 열심히 상장을 해놓고, 다시 상장폐지를 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자진상장폐지를 하는 이유? 상장의 실익이 없어서?
회사측에서 자진상장폐지를 하는 이유는 언제나 "상장의 실익이 없다"라고 명시한다. 상장의 실익이 없다는 말이 무엇일까?
보통 상장을 하는 경우는 돈을 쉽게 조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장을 하고 있으면, 유상증자 등을 쉽게 유치해서 돈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에 현금이 따박따박 쌓이고 있으면 어떨까?
회사 입장에서는 딱히 자본조달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상태에서 주주들에게 배당도 해야 되니 상장을 유지할 필요성이 적어지게 된다. 회사의 업종이 화끈한 테마(?)가 아니라면 주가가 크게 상승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장폐지를 하고 나면, 회사는 감사에서도 한숨을 돌리게 된다. 즉, 회사의 재무제표를 대표 마음대로 해도 상장사 시절(?) 보다 안전해진다.
돈이 아쉬울 때는 상장을 하고 싶어하지만, 슬슬 곳간이 차기 시작하면 그런 욕심이 생겨나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자진상장폐지의 사례들: 아트라스BX, 맘스터치
최근 제일 말이 많았던 대표적인 사례가 아트라스 BX와 맘스터치다.
아트라스 BX: 한국타이어 앤 테크놀로지로 흡수합병
효성기업 계열의 자동차 부품사였던 아트라스BX는아트라스 BX는 자동차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다. 아트라스 BX는 상장 폐지를 추진하기 위해 2016년 공개매수를 시도하였으나, 강성 주주들이 있던 관계로 실패로 끝났다.
이후 아트라스BX는 한국타이어 앤 테크놀로지(구 한국타이어)로 흡수합병을 진행해 버린다. 이때 쟁점이 되었던 사항은, 아트라스 BX가 자기 이익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뒤, 한국타이어 앤 테크놀로지에 헌납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아트라스 BX는 자동차 배터리를 만들면서 매년 3-400억의 영업이익을 내던 알짜 기업이었다. 이 상태에서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거나 그러지 않으면서,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쓴 뒤에 흡수합병을 시켜서 고스란히 한국타이어 앤 테크놀로지 조현범 회장 일가에게 헌납하였다.
당시 여러 말이 나오면서 시끄러웠지만, 최종적으로 합병이 승인되었다. 하지만 이 시끄러운 과정이 마무리 된 후, 조현범 회장은 현재 횡령, 배임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조현범 회장의 장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더 읽어보기 :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조현범 회장의 장인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녀들 현재생활 - 이주연, 이승연, 이수연, 이시형
맘스터치: 2022년 5월 31일 상장폐지
프랜차이즈 업계 중에서 나름 '혜자 브랜드'라고 팬층을 형성했던 맘스터치도 2022년 5월 31일 자진상장폐지 하였다.
맘스터치는 당시 거래되던 5000원대 보다 약 20% 정도 높은 6200원을 공개매수가로 제시하였고, 공개매수에 성공하며 95% 지분율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5월 20일부터 30일까지 나머지 5% 주주들에 대해 정리매매를 진행하였다. 공개매수가로 제시하였던 6200원을 그대로 제시하며 주식을 매입하고 5월 31일 최종 상장폐지되었다.
맘스터치의 최대주주였던 한국에프앤비홀딩스는 '맘스터치' 관련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면 투자자의 불안이 커지고, 가맹점 매출에 타격이 생긴다는 핑계로 상장폐지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상장폐지 이후부터는 공시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가맹점 관리 문제를 차단하려는 꼼수라는 말이 불거져 나왔다.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할 것 같은 회사: 삼목에스폼
얼마 전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할 것 같은 회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바로 삼목에스폼이다.
회사의 비지니스 모델: 건설용 알루미늄 폼 제작 및 임대
삼목에스폼은 건물을 지을 때 들어가는 '알루미늄 폼'을 생산하고 대여하는 회사다. 알루미늄 폼은 간단히 '거푸집'으로, 설계에 맞게 폼을 짜도기만 하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다. 건물 시공을 빠르게 할 수 있고, 규격화된 아파트 건설에 적합한 설비다.
그리고 해당 분야의 시장점유율은 약 40%에 달할 정도로 금강공업 등을 경쟁사로 두고 있는 업계 1위 업체다.
작년부터 금리상승과 건설관련 채권 불안성이 높아지면서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전반적인 주가는 낮아지고 있는 상태다. 그 덕분에 시총이 2000억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700억 인 알짜 회사다. 건설경기가 침체되었다고 하면서도 나온 결과다.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할 것 같은 이유? ① 돈은 많은데, 쓰질 않는다.
700억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지만, 배당액은 겨우 100원이다. 사업보고서에는 약 400만 주를 가지고 있는 소액주주가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주당 100원을 배당하면, 약 4억원 남짓의 배당금이 돌아간다.
최대주주인 '에스폼'과 '김준년'이 가져가는 배당액은 각각 6억 원과 2억 원 정도다. 700억에 가까운 영업이익에서 14억 만을 배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회사에 쌓여있는 누적잉여금은 약 4,000억에 달한다. 700억의 영업이익을 미래 투자를 위해 남겨둔다는 핑계를 대더라도, 이미 10년 치에 가까운 금액이 쌓여있다.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할 것 같은 이유? ② 주주구성이 독특하다.
삼목에스폼의 주주구성은 다음과 같다.
주주 이름 | 비고 | 주식지분율 |
에스폼(주) | 김준년이 69%를 소유한 비상장 회사 나머지 30%는 그의 가족들이다. |
46.5% (2023년 3월 24일 매입주식 포함) |
김준년 | 삼목에스폼 회장 동일제강 대표이사 에스폼 최대주주 |
12.8% |
이영자 | 김준년 어머니로 추정 | 3.8% |
동일제강(주) | 에스폼과 김준년의 가족이 57% 소유하고 있는 기업 |
3.7% |
매입한 자사주 | 2.8% | |
엄석호 | 개국공신(?) | 0.07% |
소액주주 | 22년 말일 기준 일반 투자자 | 27.6% |
그 외의 주주 | 소액주주가 아닌 투자자들 | 2~3% 가량 |
삼목에스폼 창업주의 아들인 '김준년' 회장은 현재 에스폼과 동일제강, 삼목에스폼 3개 회사의 대주주다. 이 중에서 에스폼은 김준년과 그의 가족들이 99%를 소유하고 있는 비상장회사다.
결국 에스폼(주)이 가지고 있는 삼목에스폼의 46% 지분과, 김준년 본인의 지분, 그리고 동일제강(주)의 지분이 모두 '김준년의 지분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김준년의 지배 하에 놓여있는 지분은 총 69.67%다.
코스닥 상장사임을 감안할 때, 90%의 지분확보가 이루어지면 상장폐지가 가능하다. 앞으로 약 20% 가량을 더 모으면 되는 상황.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할 것 같은 이유? ③ 비상장사인 에스폼에 주식을 넘기고 있다.
현재 삼목에스폼은 비상장사인 에스폼을 '지주사'처럼 활용하면서, 삼목에스폼의 주식을 모두 넘기고 있다.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다.
2018년 삼목에스폼은 '엑스폼'에 제조사업을 쪼개서 넘겼다. 그래서 삼목에스폼의 일감을 '에스폼'에 몰아주면서 삼목에스폼의 현금과 배당금을 보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당시 이 쪼개기 과정을 반대한 주주들의 주식은 자사주로 매입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이렇게 매입한 자사주는 5년 내로 처분해야 하는 거래소 규칙이 있어서, 2023년까지 모두 처분해야 했던 상태.
2021년 4월에는 에스폼의 사업을 쪼개서 다시 삼목에스폼이 합병하며 에스폼에 돈을 넘겨주었다. 에스폼이 받은 돈은 약 750억 가량이 된다.
2022년 8월 150만 주의 '삼목에스폼' 주식을 에스폼이 현금으로 214억 5천만 원을 주고 매입한다. 2023년 3월 878,293주의 삼목에스폼 주식을 또 한 번 에스폼이 122억 9천만원을 주고 매입한다. 이로서 '에스폼'은 현재 46.5%의 삼목에스폼 지분을 확보하였다.
지금부터 약 20%의 지분을 매입한다면, 현재 시총 기준으로 약 400억 정도지만 이 금액이라면 '삼목에스폼'을 상장폐지 시킬 수 있는 금액이다. 삼목에스폼의 경우에는 시총 2천억 대를 유지한다면, 현재의 아름다운 재무제표로 모두 꿀꺽(?)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자진상장폐지를 왜 지금쯤 할까?
최근 금리상승 속도가 주춤하면서, 건설 경기가 조금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말은 건설 관련 PF대출 금리도 낮아지면서 사업이 활기를 띠게 될 것이란 의미기도 하다.
과거 삼목에스폼의 주가를 살펴보면, 건설경기 호황일 때 꽤나 큰 가격상승을 보여주었다. 그로인해 단기간에 시총 4천 억대에 진입했다. 이런 상태라면 매입해야 하는 자사주의 20%의 가격이 순식간에 불어나게 된다.
상장폐지를 하게되면, 에스폼, 동일제강, 김준년 간의 지배구조를 크게 의식할 필요 없이 공시하지 않으면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막대한 유보금을 배당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러 요인으로 만들어진 최근 가격을 이탈하기 시작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상장폐지는 먼 길이 되어버릴 수 있다. 즉, 어쩌면 지금이 삼목에스폼으로서는 상장폐지 적기라는 의미다. 곧 다가올 주주총회 소식을 보면서 삼목에스폼의 행보를 지켜봐야겠다.
상장폐지주식에 대한 알 박기 방법?
자진상장폐지를 노리는 기업에 대한 알 박기는 공개매수 이전에 매입하고 버티는 것이다. 그리고 공개매수가가 적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코스피는 95%, 코스닥은 90% 이상 지분이 확보되면 상장폐지를 진행시킬 수 있다. 지분을 확보한 뒤 상장폐지가 결정이 되고 나면, 정리매매기간이 부여된다. 이때 정리매매에서도 회사 측에서 가격을 설정하고 매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까지도 팔지 않은 주식은 자동적으로 상장폐지되어 거래할 수가 없게 된다.
상장폐지 후 6개월이 지나도 소액주주가 팔지 않고 버틸 경우에는 상법 제360조 24에 따라 처리가 된다. 바로, 지배주주가 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하여 소액주주들에게 주식을 매도하라고 한다. 그리고 소액주주는 2개월 내에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주식의 95%(코스닥은 90%)가 확보되고 나면, 사실상 알 박기는 무산된다고 보아야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