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한국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술은 소주와 맥주다. 하지만 요즘에는 식습관이 변화하면서 위스키나 와인과 같은 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즐거운 파티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어느덧 호화스러운 파티를 상징하는 주인공이 된 샴페인이 지금까지 있을 수 있던 이유에는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왕의 끗발로 유명했던 샴페인
샴페인이 프랑스의 지방인 '샹파뉴(Champagne)'에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다른 와인들이 포도의 품종에 따라 이름이 붙는 것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발포와인만을 샴페인이라 부를 수 있다. (다른 나라, 지역에서 나오는 발포와인은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가 없다.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발포와인은 '까바(Cava)', 이탈리아의 것은 '프로세코(Prosecco)'라고 부른다.)
중세시대부터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랭스(Reims) 성당과 가까웠기 때문에 왕실의 후원을 받아서 유명해졌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돔 피에르 페리뇽'이 발명했다고 하는 고급 샴페인인 LVMH 그룹의 '돔 페리뇽'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중세시대 샴페인에는 거품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왕실의 후원이 있어서 유명한 술이긴 했지만 보르도 지방의 와인에 밀렸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인에서 올라오는 기포 덕분에 지금의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망한 와인의 징조 - 거품
돔 페리뇽 수사가 살아있던 1600년 대에는 샴페인에 거품이 올라오면 '망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발효가 너무 많이 진행되어서 잘못 만들어졌거나, 다른 물질이 들어간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샹파뉴 지방은 북위 49도 부근에 위치하여 겨울이 매우 춥다. (서울이 약 37도 선에 있고, 하얼빈이나 몽골, 러시아가 약 49도 부근이다.) 가을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추운 날씨로 인해 발효가 다 끝나기 전에 효모가 동면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면 동면했던 효모가 깨어나며 이산화탄소를 계속 만들었다. 문제는 이 이산화탄소 거품이 올라오면서 병을 터뜨려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저장고에 들어갈 때는 보호장비를 차지 않으면 터지는 유리에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사실상 폭탄에 가까웠던 셈이다.
어쨌든 이런 불안한 상태의 샴페인은 병이 안 깨지도록 천으로 감싸거나 해서 어찌어찌 프랑스와 바다 건너 영국까지 보내기도 했다.
샴페인을 안전하게 만들어 낸 영국인들
영국까지 건너간 '살아남은' 샴페인들에게는 신기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영국인들의 병 바꾸기였다.
영국인들은 술의 유통기한을 늘리려고 새 병에 기존 샴페인을 옮겨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인들이 쓰던 병이 매우 튼튼했다. 왜냐하면 영국은 석탄 중에서도 효율이 좋은 역청탄을 쓰고 있어서, 고온에서 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병 보다 영국의 병이 훨씬 두껍고 튼튼했다. 게다가 코르크 마개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던 우연이 겹쳐, 지금의 샴페인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이 덕분에 샴페인은 터지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하면서도 풍부한 거품을 지니고 있는 화려한 술이 되었다. 영국에서는 이 샴페인이 꽤나 히트를 하기 시작했고, 돔 페리뇽에게는 그냥 대충 팔고 있던 술이 어느 날부터 인기 있는 술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후 샴페인은 왕과 귀족들의 술로 자리 잡으면서 진정한 파티의 술로 내려오고 있다.
샴페인은 그럼 돔 페리뇽이 개발한 게 맞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다. 이미 기포가 있는 발포성 포도주는 1531년 프랑스 남부의 생틸레르 수도원에서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비슷한 형태의 발포주들이 다른 나라에도 있기 때문이다.
돔 페리뇽 수사는 샴페인을 최초로 개발했다기 보단, 왕실과 영국에 납품하면서 영국에서 가져온 단단한 병과 코르크 마개를 이용하여 터지지 않게 하는 개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근데 이 마저도 '돔 페리뇽'을 인수한 LVMH 그룹의 스토리 마케팅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당시 샹파뉴 지방에서 이미 도입이 되기 시작한 방법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수입한 술의 병을 바꾸는 영국의 관습이 이 샴페인을 터지지 않게 만든 장본인이란 뜻이다.
그래서 샴페인은 돔 페리뇽이 개발한 게 아니지만, 그가 결국 프랑스 왕가와 영국 왕가로의 수출라인을 유지하여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LVMH 그룹에서도 이를 인수했을 테니까.
샴페인이 만약에 영국의 유리기술과 코르크 마개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가스 빠진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유럽에서 유명한 와인 중 하나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만나게 된 샴페인은 그 고유의 특성을 가진 대체불가능한 사치품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기업을 분석할 때 보아야 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 이를 통해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기업이 되는 것. 기업 분석의 묘미는 이런 데 있지 않을까.
돔 페리뇽은 한 병에 2-30만원을 호가한다. 좋은 빈티지의 경우 100만 원을 쉽게 넘어서기도 한다. 1700년대의 어느 날 생겨난 약간의 변화가 여기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나도 이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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