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직접 연출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꽤나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관객층이 얕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3-40대 남성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개봉 7일 만에 50만 관객을 돌파하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화제인 이유 - 원작자 직접 참여로 퀄리티 높은 액션씬
슬램덩크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에서 연재되었던 청소년 농구만화다. 불량학생인 강백호가 농구선수로 거듭나는 성장과정을 그려내며 수많은 팬을 양산했다.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인기가 엄청났고, 더 나아가 대만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이 당시 마이클 조던이 슈퍼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NBA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슬램덩크의 인기와 어우러지며 한국 전체에 폭발적인 농구 열풍이 불었다. 서장훈, 현주엽이 현역으로 뛰던 대학농구팀의 인기와 장동건이 주연을 맡았던 MBC드라마 '마지막 승부'까지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었다. 이후 농구 인구가 늘어나면서 프로농구가 개막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농구의 개막에 슬램덩크도 한몫을 한 셈이다.
90년대는 농구 자체가 시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수 많은 콘텐츠가 생산될 때였다. 하지만 당시 슬램덩크는 아주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이른바 '손뼉 칠 때 떠나'버린 것이다. 일반적인 만화의 스토리가 더욱 강한 상대와의 대결로 스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과 달리, 작가 이노우에는 마지막 '산왕'과의 대결을 끝으로 스토리를 종결지어버렸다.
연재 종료 후 27년이 흐르는 동안 '슬램덩크 2'가 돌아온다는 루머가 계속 반복되었지만, 작가는 이에 호응하지 않았다. 그저 몇 가지의 일러스트나 프리퀄 격인 단편 정도만 발표했을 뿐이다. 슬램덩크는 TV판 애니메이션도 있었고 극장판도 있었지만 퀄리티는 평범했고, 사실상 만화책을 재탕한 수준에 지나지 않아서 기존 팬들에겐 대단한 작품이 아니었다.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예고편이 공개되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그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원작자가 직접 참여한 예고편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팬들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였다.
이번 극장판을 직접 본 사람들은 대부분 액션씬에 감탄하고 있다. 3D기술을 접목하여 만화책의 캐릭터가 직접 살아 움직이는 듯 한 장면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건 원작자인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참여해서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원작자인 이노우에는 슬램덩크 연재 당시에도 장면 연출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만화책이라는 인쇄매체 속에서 가장 적절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재능이 있었던 작가다. 그는 실제 NBA 선수들의 사진을 트레이싱하며 만화책에서 구현할 수 있는 농구 액션의 끝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직접 돌아와서 제작한 고퀄리티의 극장판이라니, 팬들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슬램덩크가 지금 웹툰으로 나온다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슬램덩크의 팬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지만, 옛날 작품이었기 때문에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지금 웹툰으로 슬램덩크가 나온다면 인기를 끌 수 있을까?
화면 전개는 가능, 하지만 스토리는 글쎄?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당시 만화책은 기본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의 가로진행이었다. 만화에서의 스토리와 액션의 진행은 언제나 가로로 연결되는 게 기본이었다. 그리고 최대 지면의 크기가 활짝 펼친 양쪽 페이지였기 때문에 그 이상을 넘어가는 화면을 담아낼 수가 없었다. 일본 만화가들의 작화는 이런 화면의 한계를 인식한 상태에서 엄청난 노력을 통해 그림 내에 '심도'를 구현하며 액션을 만들어냈다.
위 표지그림처럼, 정지된 듯 하면서도 영상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처럼 그려내는 것이 작가들의 기본 능력이었다. '드래곤볼'을 그렸던 토리야마 아키라의 경우에도 인쇄책에 최적화된 스토리텔링으로 끊김 없이 진행되는 액션을 구현해내기도 했다. 슬램덩크 이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나루토' 역시 평면그림에서 보기 힘든 엄청난 심도를 표현하면서 만화 속의 액션에 풍부한 입체감을 부여했다.
한국이 현재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웹툰의 경우에는 위 아래로 화면을 이동하는 스크롤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웹툰에서는 액션의 전개방식도 바뀌었다. 일반 만화책이었다면 5-6페이지에 걸쳐 인쇄되어야 할 장면을 한 호흡에 그려낼 수도 있게 되었다. 길게 내려가는 화면구성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방식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웹툰 중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나혼자만 레벨업'의 故장성락 작가가 이러한 액션씬을 만들던 분이다.
웹툰이 인기를 끌어서 출판을 하게 될 경우에는 작가와 출판사가 오랜 기간 미팅을 한다. 웹에서 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컷분할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슬램덩크가 지금 웹툰으로 나온다면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결코 뒤지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이 장면은 산왕전에서의 거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송태섭의 돌파장면이다. 단신을 이용한 낮은 드리블을 이용해 상대를 돌파하는 명장면이다. 이 장면이 대단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화면 구성과 액션에 대한 이해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의 방향, 인물들의 시선처리 등으로 화면 집중과 스토리의 전개가 모두 성공하고 있다.
그는 슬램덩크 전체에 걸쳐 왜곡된 클로즈업, 프레임을 겹치는 방식 등으로 좁은 만화책 지면을 최대한 활용한다. 화면 구성에 대한 이해가 아주 높은 작가라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배가본드'에서도 드러나는 데생 실력을 보고 있으면, 아마도 그가 웹툰으로 슬램덩크를 그렸다면 스크롤 방식을 활용한 새로운 스포츠 액션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분명 스토리는 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한국 웹툰을 보고 있으면 스토리의 전개가 굉장히 빠르고, 가벼운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슬램덩크의 전매특허였던, '슛 하나에 회상 하나'와 같은 스토리 전개가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인 것이다. 그의 작화는 충분히 웹툰계에서도 통할 수 있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진중한 스토리 전개 방식은 아마도 살아남기 어렵지 않았을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의 만남은 팬으로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난 기분이라고 할까? 그가 요즘 시대에도 통할지 궁금했지만, 역시나 통하고 있는 것 같다. 웹툰으로 그를 만나긴 어렵겠지만, 이 영화가 조금 더 흥행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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