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누거나,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것이 일상화된 지금, 그 기원은 무엇일까?
보수와 진보: Conservative, Progressive - 기존 질서에 대한 입장차이
보수와 진보의 기원은 정치활동이 일어나면서부터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약 18세기 무렵 프랑스혁명시기를 전후로 정립이 되었다.
18세기의 유럽은 그야말로 혼란의 시기였다. 왕권에 대한 위기가 찾아오면서 왕과 대중 간의 권력 다툼이 일어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일반 대중이 아니라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경제권을 획득한 계층과 태어난 신분으로 권력을 유지하던 왕 그리고 귀족과의 싸움이었다.
누가 권력을 쥐는가에 대해 싸우는 과정에서 왕과 귀족들은 혈통을 강조한 반면, 부르주아지들은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는 점을 들면서 대중을 설득해나가기 시작한다. 혈통은 사람들에게 우연이었던 반면, 모두에게 공평한 인권이라는 스토리텔링이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왕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운 '프랑스 대혁명'이나 영국의 '명예혁명' 등이 이 결과물이다. 권력 싸움에서 부르주아가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왕이 어느 날 갑자기 처형당하거나, 명예직으로 물러나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 놓은 정치, 경제, 문화적 질서가 바로 바뀌진 않는다. 습관이라는 것은 보통 익숙한 데 머물러 있다가 천천히 변화하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여기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존의 질서를 따르며 변화를 최소화하는 쪽을 보수라 부르게 되었고,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쪽을 진보라 불렀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보수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집단을 말하고 진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는 집단을 지칭하게 된다.
좌파와 우파: Left, Right - 의회에서 앉는 자리에 따라 비롯된 표현
좌파와 우파는 의회정치가 시작된 시기에 나타난 개념이다. 의회의 '오른쪽'에 다 같이 앉아있던 당이 '우파'였고, 의회의 왼쪽에 다 같이 앉아있던 당이 '좌파'가 되었던 것이다.
그저 앉은자리를 지칭한 말이었지만, 의회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집단인 프랑스의 왕당파나 영국의 토리당이 주로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우파=보수'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왼쪽에 앉아있던 프랑스의 공화파나 영국의 휘그당이 진보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좌파=진보'라는 공식도 성립된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당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유명한 개개인이 성향에 따라 모여있던 정도였기 때문에 좌파, 우파라는 표현이 쓰였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즉, 'A당의 당원이기 때문에 좌파'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랑 비슷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쪽에 모여 앉아있다 보니 그게 좌파가 된 셈.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 그리고 각 분야마다 다르다.
요즘 시대에는 '보수=우파', '진보=좌파'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이를 통해 그룹을 나누는 것을 즐기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와 진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보니, 한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으로 정리하자면,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은 진보, 좌파고 안정을 추구하는 집단은 보수, 우파라고 보면 되겠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보자면 이 상대적인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던 당시 '보수'는 왕과 귀족의 집단을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왕의 권한을 지키는 쪽이었고, 사람들의 능력에 따른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에 따르는 것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진보'는 달랐다. 사람의 능력에 따른 실력을 중요시했다. 그래야 자신들이 일군 부를 지키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 보수층은 개인의 능력에 입각한 실력을 추구하고, 진보층이 개인 능력의 차이를 정부(제도)가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닌 것과 정반대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는 시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잘 뜯어보면, 분야에 따라서도 매우 달라지는 개념이다.
현대 '보수층'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치관들을 공유한다.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경쟁, 나라를 지키기 위한 헌신,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 등이다. 개인과 가족을 중심에 두는 개인적인 삶에 높은 가치를 두면서도, 나라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집단주의적인 행동을 함께 취한다. '진보층'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입장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 또한 받아들인다. 둘 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아이러니'가 펼쳐지는 것이다. 한쪽에선 개인주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집단주의적인 가치들을 추구하게 된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대적인 차이를 살펴보는 척도에 불과하다. 이 기원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이 단어에 크게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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