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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영국을 이긴 헤지펀드

by 중계붕어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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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

헤지펀드의 대표 격인 이름, 퀀텀펀드. 퀀텀펀드가 유명해진 것은 조지 소로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9년 그가 설립한 퀀텀펀드는 1990년대에 각 국 중앙은행을 상대로 환율전쟁을 벌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벌였던 환율 전쟁들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목차

  • 1992년 영국 중앙은행 공격
  • 1993년 유럽 은행 공격
  • 1995년 일본 은행 공격
  • 환율을 타고 놀았던 기인

 

1992년 영국 중앙은행 공격

1990년대 초반 유럽에는 '독일 통일'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다. 독일 입장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바로 통일 직전까지 너무나 차이나는 동서독 간의 경제적 차이였다. 화폐를 양 지역의 경제규모에 따라 교환할 경우, 거의 10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실상 동독 지역이 붕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이를 빠르게 수습하고자, 동서독 화폐를 1:1로 교환하는 초강수를 두고 독일 경제 발전에 온 힘을 기울인다. 이 정책은 동독 지역에 10배의 돈을 푸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유발하는 인플레이션을 줄이고자 금리도 막대하게 올리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단일 유로화가 출범하기 이전까지 각국의 화폐를 함께 묶으려고 회원국 간에 맺고 있었던 환율 조율 협정(ERM)때문에, 독일의 금리인상이 EU회원국 전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즉, 독일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모든 유럽 국가들이 강제로 금리를 인상하게 된 것이다.

 

금리를 따라서 인상하지 않을 경우에는 ERM으로 인해 자국 화폐가치가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리인상을 견딜 수 있는 나라들은 따라가지만, 그 외의 국가들은 ERM을 탈퇴하거나 종이쪼가리가 되는 자국화폐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유럽에서 가장 여유가 있던 영국 중앙은행은 파운드화의 가치는 지켜질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조지 소로스는 독일이 금리를 지키고 있는 한, 인위적으로 환율에 개입하는 ERM으로는 절대 영국 중앙은행이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파운드화 매도전략'을 내기로 한다. 그는 언론에도 이를 알리면서, 전 세계 헤지펀드들에게 '영국 중앙은행'을 공격하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조지 소로스는 정말로 100억달러 어치의 파운드화를 매도하기 시작하였고, 다른 헤지펀드들도 이에 동참하여 1,100억 달러 매도를 한다. 영국 중앙은행은 모든 외환보유고를 동원하여 파운드화를 매수하고, 단기금리까지 15%로 인상하는 등 방어에 최선을 다 했지만, 전 세계 헤지펀드에서 몰려든 돈을 막을 수는 없었다.

 

소로스는 약 한달동안 벌어진 이 매도전략으로 10억 달러 정도를 벌었다고 알려져 있다.

 

1993년 유럽은행 공격

영국은행 공격으로 재미를 본 소로스는 93년에는 각 유럽 중앙은행들을 대상으로 공격을 지속한다. 영국은행을 공격할 때와는 달리 대규모 공격이 아니라,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공격하는) 전략을 사용하며 각 국의 중앙은행을 무릎 꿇게 하였다.

 

1993년 6월, 소로스는 2년 넘게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 경제에 힘이 다 했다고 기고하며 마르크화가 폭락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마르크화를 매도하고 프랑스 프랑화를 매입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영국은행 공격에서 재미를 봤던 다른 헤지펀드들도 소로스의 말을 믿고 이번엔 마르크화를 매도하고 프랑화를 매입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독일 중앙은행은 소로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낮추지 않았다. 소로스는 또다시 7월 인터뷰를 통해 "프랑화를 매도하진 않겠다"라고 하면서 여전히 마르크화가 폭락할 것이란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독일 중앙은행은 금리를 동결시켜버리게 된다.

 

소로스는 '매도하지 않겠다'던 프랑화를 대거 매도하고, 상대적으로 저가였던 마르크화를 매입하면서 또 다시 시세차익을 챙긴다. 그 뒤에는 자신이 마르크화 매집으로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자 매도해버리고 달러를 사들이게 된다.

 

소로스는 약 세 달동안 자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유럽 국가들을 농락시켰다. 93년에는 이 전략으로 약 1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1992년, 93년 영국과 유럽은행 환율공격은 유로단일통화를 출범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환율 변동폭을 6%로 강제하였던 ERM이 원인이 되긴 했다. 그리고 소로스의 공격으로 인해 유로화의 도입도 결국 2000년대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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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일본 공격

2년 뒤,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의도치 않게 일본을 공격하게 되었다.

 

1994년 소로스는 인터뷰를 통해 어마어마한 경제발전을 이룬 일본 엔화에 비해, 달러화가 평가절하되어 있다는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달러 강세를 예상하고 달러를 매입하기 시작하였다.

 

94년 말부터 미국 금리가 높아지는 쪽으로 선회하면서 달러 강세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바로 옆 나라인 멕시코의 경제위기가 나타난 것이다. 멕시코에 투자된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순식간에 멕시코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재해복구를 위해 미국에 투자되어 있던 일본자금이 빠져나가게 되었다.

 

이는 결국 95년 미국이 선회한 고금리 정책이 망가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달러화 강세가 어렵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다면 소로스가 매입한 달러는 곧 손실이라는 의미였다.

 

소로스는 자신이 달러를 사들이는 동안 환율 KIKO(Knock-in, Knock-out) 상품을 개발하여 일본 수출업자들과 은행에 팔아둔 것이다. 그가 설정한 옵션은 급작스러운 환율변동이 일어날 경우, 소로스에게 환차익을 돌려주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급격한 변동'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상품도 판매가 이루어졌던 셈.

 

1995년 달러-엔 환율은 1달러당 95엔에서 100엔 정도를 선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94엔이 소로스가 이익을 보는 풋옵션 계약이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멕시코 금융위기와 고베지진으로 인해 달러 약세로 전환되기 시작하자, 그는 이 옵션으로 손실을 만회하고자 매입하고 있던 달러를 전부 매도하면서 미친 듯이 엔화가 상승하도록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달러당 90엔까지 상승하면서, 소로스는 수억 달러에 이르는 이익을 보았다고 알려져 있다.

 

키코옵션을 통해 급작스러운 시장변동까지 돈으로 바꿔버린 소로스는 이 기세를 몰아 일본 중앙은행도 공격하였다.

 

일본의 외환시장은 규제가 까다로워, 독자적인 시세 결정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의 외환시장 시세를 받아들여서 거래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차 상 먼저 거래가 이루어지는 런던, 뉴욕, 시드니의 순서로 시세가 비슷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가능했던 방법이다.

 

하지만 1995년 4월 10일 월요일, 소로스는 시드니 외환시장에 엔화 매수주문을 넣어서 엔화 가격을 미리 띄워놓았다. 시드니와 도쿄 외환시장의 시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런던과 뉴욕 외환시장이 주말에 폐장했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소로스와 헤지펀드들은 도쿄 외환시장에서 마르크를 팔아버리고 엔화를 매입하기 시작한다. 마르크-달러-엔화로 연동되어 있는 환율의 균형을 무너뜨려버리고, 엔화의 강세를 더욱 빠르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당시 90분 만에 엔화 가격을 5% 올려버린 대기록을 세웠다.

 

일본은행은 외환시장 균형을 위해 10억달러를 풀고, 일본정부의 금리 인하까지 단행하기로 하여 엔화의 가치를 낮추는데 전력한다. 이 상태에서 소로스와 헤지펀드는 엔화 매도로 전환하였고, 이후 약 한 달 동안 일본은행이 사들이기 시작한 120억 달러의 차익금은 소로스와 헤지펀드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환율을 타고 놀았던 기인

그는 각 정부를 공략하며 단 5년동안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수십 조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가 이렇게 환율을 타고 놀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유럽 정부의 의무적인 환율 조절 정책

유럽은행들을 공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도로 연결되어 있던 의무적인 환율조절 정책이었다. ERM 가입국은 화폐통합을 준비하기 위해 환율 차이를 무조건 6% 이내로 조절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한 국가의 금리 인상으로 화폐가치가 높아져버리면, 무조건 다른 나라들이 끌려오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소로스는 독일의 금리를 내릴 수 없다는 상황을 활용하여 영국을 몰아붙였다.

2. 자신의 흐름으로 맞춘 거래

그는 영국은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주목받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언론플레이를 펼치면서 스스로 환율 결정자로 나섰다. 안 판다고 하고서 팔아버리는 전략은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시장의 우위에 있었다.

3. 새로운 상품까지 개발하는 등 모든 상황을 이용한다.

그는 일본을 공략할 때, 큰 흐름은 읽었지만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새로운 옵션상품까지 만들어두었다. 그 덕분에 그는 이 상황을 이용하여 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시드니와 도쿄의 시간차를 이용한 공격에서도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한 셈.

 

이상으로 조지 소로스가 1990년대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각국 환율전쟁의 내용을 알아보았다. 금리가 상승하고 있는 2022년에도 그와 같은 헤지펀드가 또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2023년을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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