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의 가계도를 소개하면서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을 먼저 소개했다. 그 이유는 정주영의 자녀가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들 역시 굵직한 사업들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현정은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배상판결에 대해 이해하려면 정주영의 자녀들을 알아야 하니, 별도로 소개해본다.
한국 건설을 일군 정주영의 형제들 - 기업 총수의 가계도 : 현대가 - 정주영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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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의 현대그룹: 자수성가의 아이콘, 왕회장
정주영 회장은 1915년에 태어나 2001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서울에 상경하여 쌀가게와 자동차수리공장을 운영하다가 미군정 시절 현대건설을 세우고 미군관련 사업을 따내면서 성장한 케이스다. 이 당시 건설 관련 업체는 대부분 형제들과 함께 키우면서 현대 초기의 기틀을 잡는다.
그의 동생들과 자식들이 모두 회장들이었기 때문에, 그 위의 회장이라는 '왕회장'으로 불렸다. 생전에 한국에서 가장 부자가 되기도 했지만 검소하게 살았다는 점에서도 독특한 면이 있다. 오죽하면 그가 외제차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대단한 현대 사장단이라고 하더라도 현대 중형세단을 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치권에 환멸을 느껴 본인이 직접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소떼를 몰고 방북을 하면서 대북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개인의 삶에서는 다르게 평가될지 모르지만, 기업인으로서는 분명 대단한 면모를 보인 인물이다.
정주영의 자녀들 - 공식적으로 8남 3녀
정주영은 수 많은 자녀들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으로 11명이지만, 그 외에도 자식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삼성가가 혼외자들을 사실상 무시하였던 것과는 달리, 정주영은 대부분 자신의 호적에 올리거나 사례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 중에서 실제 정주영의 현대를 이어받은 것은 11명의 자식들이다.
1남 정몽필 - 1982년 사망하였음
정주영의 부인인 변중석 여사와의 자식이 아니라, 그 이전 부인과 낳은 아들이다.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1982년 사고로 사망을 했다. 살아생전에 변중석 여사도 집안 장남으로 대우했다고 한다. 인천제철의 사장으로 있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아버지의 성격을 닮았다고 전해진다.
자녀는 두 딸 밖에 없어서, 후대를 잇는 자녀에 대한 언급이 많지는 않다.
2남 정몽구 - 현대자동차 그룹 명예회장
정몽필의 사망 이후 실질적인 장남의 역할을 했다. 아버지 대신 감옥에 다녀오기도 하였고, 현대그룹의 후계자라고 자리를 잡아갔다. 정주영이 정계에 진출하자 현대그룹을 대신 지휘한 큰아버지 정세영을 도왔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왕자의 난'에서 정주영이 총애하던 동생 정몽헌에게 밀려나면서 자동차 계열사를 가지고 현대자동차 그룹으로 분리독립 하였다.
원래 현대차부문은 정주영의 동생인 정세영이 가져가려고 했지만, 정주영이 강력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주겠다고 선언하여 지분교환방식으로 정몽구가 가져오게 되었다. (정몽구는 정세영, 정몽규 부자에게 현대산업개발(HDC)의 지분을 교환해 주었다.)
이후 분리된 현대그룹에서 기존 사업들이 부도가 나자 2011년 현대건설을 사오면서 정주영의 현대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그의 아들 정의선에게 현대차 그룹을 맡기고 물러난 상태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대표적인 회사들로는 현대자동차, 현대카드, 이노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등이다. 제철, 철도, 건설, 광고, 금융 등 다양한 분야를 모두 가져오며 정주영의 현대를 이어가고 있다.
3남 정몽근 - 현대백화점 그룹 명예회장
'왕자의 난' 이후, 조용히 현대의 유통계열을 정리하여 분리독립하였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에 이어 3대 백화점 브랜드로 성장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그의 아들인 정지선 회장의 지휘로 '더 현대'가 프리미엄 쇼핑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 한섬, 현대리바트 등 쇼핑과 패션 등 소비재와 관련한 다양한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현대가 중에서는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과 더불어 대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4녀 정경희 - 정희영 선진종합 회장과 결혼
5남 정몽우 - 현대알루미늄 회장
다른 형제들이 비하여 능력이 없다고 한탄하며 우울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1990년 음독자살하였다고 하는데, 다른 형제들에 비해 기업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4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다보니, 그의 자녀들인 정일선, 정문선, 정대선은 정몽구가 아끼며 후원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현대차 그룹 회장인 정의선과 정일선은 형제처럼 자랐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자녀들은 현대 BNG스틸을 담당하고 있다.
정몽우의 부인인 이행자 여사는 제주도에 '본태박물관'을 개관하여 운영하였다. 그리고 그의 막내아들인 정대선이 KBS 아나운서 노현정과 결혼한 사이다.
6남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정몽구가 몸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과 달리, 일처리가 젠틀하여 정주영이 경영분야에서 총애했다고 한다. '왕자의 난' 당시, 정몽구와 대립각을 세우며 갈등을 빚다가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현대엘리베이터 등을 가지고 현대그룹을 맡게 되었다.
현대그룹을 맡음과 동시에 현대건설과 현대전자의 부도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대형 손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현대아산)과 관련하여 대북송금 문제로 검찰조사를 받던 중 투신 자살하였다.
이로 인해 현대그룹은 반쪽짜리가 된 상태에서 그의 아내인 현정은이 회장으로 지금까지 활동 중에 있다. 현대그룹은 대기업 집단에서 중견기업으로 내려온 상태다. 현정은은 현대네트워크라는 회사를 통해 현대무벡스와 현대엘리베이터를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으며 그녀의 자녀들인 정지이, 정영이, 정영선에게 넘겨주려고 하고 있다.
7남 정몽준 - 현대중공업 그룹
재벌 2세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여 정주영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나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정주영이라 다른 기업 총수들에게 정몽준에 대한 자랑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그는 일찌감치 정치로 진출하며 현대중공업 회장의 자리만 받았다. '왕자의 난' 이전에 사실상 이미 독립 상태가 되었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HD현대라는 이름으로 조선, 에너지관련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더불어 대기업으로 분류된다.
정몽준이 정계로 진출하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회사 운영에 직접참여는 하고 있지 않다. FIFA 부회장으로서도 2002 월드컵 유치에 큰 역할을 하여 축구계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현재는 사실상 정계은퇴 상태로 지내고 있지만, 서울아산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이사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서 13대부터 17대까지 5선 국회의원이 되었고, 이후에는 서울 동작구로 출마하여 18, 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서울시장에도 출마하였고, 2002년 월드컵 유치 이력을 기반으로 대선에도 출마하였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로 대선을 포기하였다.
8남 정몽윤 -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회장
1955년 창립된 '동방해상보험'이 여러 경로를 거쳐 1983년 현대그룹에 인수되었던 것이 현대해상의 시작이다. 1985년부터 현대해상화재보험으로 현대그룹의 금융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1999년 분리독립되어 정몽윤에게 넘겨졌다.
현재 현대해상은 손해보험업계 2위의 규모로, 현대그룹의 대부분 보험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하이카,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준대기업의 규모로 인정받고 있다.
9남 정몽일 - 현대엠파트너스 회장
정주영의 막내아들인 정몽일은 금융계열사였던 현대울산종합금융을 물려받았지만, IMF 당시 동양종합금융에 합병되었다. 정몽준의 배려로 현대기업금융과 현대기술투자, 현대선물의 경영을 담당했다.
현대가 형제들의 지원을 받아 현대미래로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현대기업금융을 인수하게 되었다. 현재 해당 회사는 계열분리를 통해 다른 현대가의 회사들과 거래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녀 정정인 - 김경희씨와 낳은 자식으로, 할리우드에서 단역배우로 활동한다는 소식만 남아 있음.
11녀 정정임 - 김경희씨와 낳은 자식으로, 미국에서 결혼하여 생활 중이란 소식만 남아 있음.
정주영의 현대가 여러 그룹으로 찢어졌지만, 현재까지도 한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해 보인다.
기업 총수의 가계도: LG그룹의 직계 4대 구인회, 구자경, 구본무, 구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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