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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기업 총수의 가계도: LG그룹의 직계 4대 구인회, 구자경, 구본무, 구광모

by 중계붕어 202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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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재계서열 4위에 이르는 LG. 지금은 LG와 GS로 분리되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LG의 직계 4대의 가계도를 알아본다.

 

지금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LG는 Lucky Goldstar의 약자로, 각각 럭키(락희화학)와 금성사의 이름을 합하여 만들어졌다. 구인회와 허만정의 동업으로 만들어졌으며, 2005년 LG그룹과 GS그룹이 완전히 분리하기 전까지 두 집안이 함께 운영해 왔다.

 

LG의 1대 창업주: 구인회 (1907~1969)

LG의 1대 창업주인 구인회는 조선시대 문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교적인 가풍이 워낙 강해서, 사업의 시작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사업에는 아들만 참여하고, 딸은 전업주부로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920년 허만식의 딸 허을 수와 결혼하여 자녀들을 두었다.

 

1931년 동생 구철회와 함께 포목상을 시작하여, 점차 규모를 늘려 1944년에는 트럭 30대로 운수업을 하게 된다.

 

1945년에는 부산에 조선흥업사를 설립하여, 미군정 하에서 무역사업을 하던 중 자신의 장인인 허만식의 6촌 형제 허만정(LG 공동 설립자)으로부터 자식인 허준구를 사업적으로 키워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허만정의 투자를 받으면서 두 집안의 동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구인회는 화장품 판매업을 하다 생산을 겸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플라스틱을 이용한 생활용품 제작에 뛰어든다. 이때 세워진 회사가 바로 락희(Lucky) 화학공업사다.

 

부산에 위치했던 덕에 한국전쟁의 포화를 피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을 했던 구인회는 1955년 럭키치약과 같은 생필품을 자체 생산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복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민간방송과 라디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라디오를 수입하지 말고 생산하겠다고 '금성사'를 설립하여 라디오를 제작하였는데, 가격대비 성능이 신통치 않아 고비를 겪는다. 그러나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으로 '라디오 보급'을 시작하면서 이와 맞물려 금성사의 라디오가 히트를 치며 '가전의 LG'를 시작하게 된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기간산업에 대한 진출을 요청하여 구인회는 전선공장(현재 LS전선의 모체)을 설립하게 된다.

 

구인회의 3남 구자학은 삼성 이병철의 2녀 이숙희와 결혼하여 두 집안은 사돈지간이었다. 그래서 구인회와 이병철의 관계는 돈독하였으나, 1968년 이병철의 전자산업에 진출하겠다고 하자 '사돈 사업에 끼어드냐'면서 관계가 틀어져서 서먹하게 지냈다고 알려져 있다.

 

1960년대에는 세제(하이타이)를 출시하고, 정유사업 진출, 주방용 세제와 샴푸 등을 출시하며 승승장구하였지만, 1969년 12월 31일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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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2대 회장: 구자경 (1925~2019)

LG의 회장 중, 가장 장수하였으나 자신의 아들이자 3대 회장인 구본무를 먼저 보내는 아픔이 있기도 했다.

 

구인회의 장남으로 태어난 구자경은 진주에서 나고 자라 교사로 일하고 있던 중, 1945년 8월 12일 일제 입대영장을 받았다. 하지만 8월 15일 광복이 되며 입대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부름에 따라 기업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공장 시설관리인부터 배우면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1969년 12월 31일 구인회의 사망으로 1970년 1월에 바로 럭키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에는 1972년 1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1978년 2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1981년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5년 71세를 맞으면서 장남인 구본무에게 경영권을 넘기며 명예회장으로 은퇴하였다.

 

천안시의 본인 농장으로 내려가, '수향식품'이라는 식품회사를 차리고 운영했다. 수향식품은 LG그룹 임직원에게 선물세트로 판매되기도 하고, 편의점 GS25에서 판매되는 '순수향 냉동만두'로 납품되기도 했다.

 

2008년 부인인 하정임 여사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2018년에는 장남인 3대 회장 구본무 회장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구자경의 장손이자 구본무의 장남인 구원모가 1994년 19세의 나이로 요절하며, 자식과 손자를 먼저 떠나보내기도 했다.

 

야구를 상당히 좋아하였고, 1981년 한국프로야구 경남지역 구단 창단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제안을 받을 당시 구자경이 해외출장을 가 있어서 즉답을 하지 못했는데, 답이 늦어지는 바람에 롯데가 창단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89년 벼르고 있다가 서울 연고의 MBC청룡이 매물로 나오자 구단을 인수하며 현재의 LG트윈스를 창단하게 되었다.

 

LG 3대 회장: 구본무 (1945 ~ 2018)

아버지인 구자경이 1995년 은퇴를 하고, 회장직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섰다.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여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2군 멤버들까지 모두 기억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선수단을 각별히 챙기기도 하여, 그가 사망할 당시에도 선수들이 예우를 갖춰 시합을 하였다고 한다.

 

너무 비싸지 않은 술을 즐겼다거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에도 기부금을 내고도 혜택을 받지 않아서 청문회에 당당했던 미담이 많기도 하다.

 

스마트폰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초반 진입이 늦었던 점과 후속 조치가 늦어져서 결국 그의 사후 LG 휴대폰 사업부는 사라지게 되었다.

 

1994년 장남을 사고로 떠나보내자, 남자만 경영에 참여하는 집안의 분위기를 따라 아들을 낳으려 했지만 모두 딸만 낳게 되었다. 그래서 기업 승계를 위해 동생의 아들인 구광모를 2004년에 양자로 받아들였다.

 

2005년에는 현재 GS 그룹의 명예회장인 허창수와 계열분리를 진행하여, GS측에 정유, 유통, 건설부문을 넘기면서 양 집안의 동업을 종료하였다.

 

2018년 뇌종양으로 인해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후 20일 사망하였으며, 이후 조카이자 양자인 구광모가 LG 4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LG 4대 회장: 구광모(1978 ~)

1978년 생인 구광모는 구자경의 차남인 희성그룹 구본능 회장의 아들이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시절 현재의 부인을 만났다고 한다. 이 당시 구광모는 이미 구본무의 아들로 입양된 상태였기 때문에, 부인 집안회사(보락)가 LG생활건강 관련 매출이 증가하면서 주가가 폭등하였다고 한다.

 

입양된 후,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한 뒤, 2007년 스탠퍼드 MBA를 다니다 중퇴하였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다가 2009년 LG전자로 복귀한 뒤 2011년 뉴저지법인 차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2014년에는 국내로 돌아와 LG전자 사업부문을 경험하고 2016년에는 상무로 진급하였다. 2018년 6월 구본무의 사망으로 사내이사,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4대 회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구본무의 사망 약 한 달 뒤 젊은 나이(만 40세)로 취임하여 회사의 구조조정과 더불어 적극적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구단주로서 LG트윈스의 20년 만의 우승에 꽤나 큰 역할을 하여,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은 편이다.

 

 

최근 구광모는 상속 관련 분쟁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관련 글은 나중에 정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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