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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총수의 가계도 - 롯데 신격호 회장의 형제들

by 중계붕어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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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업 총수들을 보면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늘은 한국 사회를 이끈 삼성가의 이병철, 현대가의 정주영만큼 놀라운 기업인이었던 롯데의 신격호 회장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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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재의 신화를 만들어낸 인물 - 신격호 회장

지난 2020년 사망한 신격호 회장은 1921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의 경우에는 부모가 부유했던 반면, 신격호 회장의 경우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현대의 정주영 회장과 더불어 '자수성가 재벌'로 손꼽힌다.

 

신격호 회장은 어린시절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등학교)를 졸업하였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하고 농사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이후,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신격호는 부산에서 정착하여 자식을 낳고 생활하다 더 큰 꿈을 위해 부인과 자식을 놔두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는 도쿄에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일을 하였다. 이 와중에 일본인 조력가 히나미츠의 도움으로 공장을 차렸는데, 폭격으로 인해 두 차례나 공장이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1945년 해방을 맞이한 상황에서 쫄딱 망해버린 신격호는 히나미츠에게 빌린 돈이라도 갚자는 심정으로 비누와 크림 등을 만드는 회사를 세우고 이를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여 1년 뒤 히나미츠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집까지 한 채 사주었다고 한다.

 

재기에 성공한 신격호는 이후 밑천을 바탕으로 기름, 비누, 크림 등을 만드는 일을 하던 중, 껌에 대해 연구하게 되면서 '전설의 롯데껌'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 껌이 바로 롯데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었다. 

 

신격호가 껌을 만들던 당시 한국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1965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으로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정부에서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기업가인 신격호에게 한국 진출을 요청하였다.

 

신격호는 이에 응하여 '롯데제과'를 설립하여 과자와 껌을 만들고, 과자 포장재를 만들기 위해 '롯데알미늄'을 세워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롯데껌에서 검출된 쇳가루로 인해 롯데제과는 3개월 제조 정지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제조정지 처분이 롯데에 새로운 사업을 열어주게 된다. 바로 호텔사업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방한한 외국인들을 대접할 만한 '국격있는 시설'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고급호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제조정지 처분을 받은 신격호를 직접 불러서 호텔사업을 하면 제조정지 처분을 없애주겠다고 꼬드기게 되었다.

 

신격호의 롯데는 이렇게 호텔사업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후로 음료, 식품, 유제품과 전자제품 등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하며 현재의 롯데그룹의 초석을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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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의 형제들 - 5남 5녀 총 10형제

신격호에게는 4명의 남동생과 5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10명의 형제 중에서 가장 맏아들이었던 신격호는 정주영과 마찬가지로 사업과정에서 자신의 동생들과 많은 사업을 함께 진행하였다. 편의상 형제 전체 순서대로 소개한다. 

2남 신철호 - 롯데의 2인자, 멜론제과 설립

첫째 동생인 신철호는 신격호가 일본으로 떠나자 교사생활을 하며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하였다고 한다. 신격호가 롯데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그와 동생인 신춘호를 불러 경영수업을 하고, 한국 롯데를 설립하게 하였다.

 

신철호는 한국 롯데의 사장직을 받고 롯데의 이인자가 되었으나 신격호를 밀어내고 한국 롯데를 장악하려다 들키고 만다. 이에 신격호와 신춘호는 신철호를 고소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는 감옥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부친의 중재로 일단락되었지만, 롯데에서는 떠나고 별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다 1999년 사망하였다.

3녀 신소하 - 남편 서병택

평범한 가문으로 출가하여 특별히 롯데와 관련된 기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4녀 신경애 - 남편 우동조

마찬가지로 특별히 롯데와 관련된 기사에 등장하지는 않고 있다.

5남 신춘호 - 농심그룹 회장

신격호 회장이 일본으로 간 사이, 장남 노릇을 했던 신철호가 교사생활을 하는 사이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장사를 했다고 한다. 신격호가 신철호에게는 한국 롯데를 맡기고, 신춘호에게는 일본 롯데의 무역부장을 맡겼다. 이후 라면사업을 하고 싶었던 신춘호는 신격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라면사업을 추진하며 신격호와 갈라서게 되었다.

 

이후 '롯데라면'을 만들었지만, 롯데의 이름을 쓰지 말라는 신격호의 항의에 '농심'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신격호가 사망할 때까지 의절하여 지냈다고 알려졌으나, 본인도 이듬해(2021년) 사망하여 자식 대에서는 교류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6녀 신경숙 - 남편 박성황 한일향료 사장

신경숙과 결혼한 박성황의 경우 '한일향료', '정본산업' 등을 운영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회사는 모두 롯데식품과 롯데홈쇼핑 등으로 합병되어 롯데가를 이루고 있다.

7남 신선호 -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

일본에서 면류를 생산하는 '산사스 식품'을 경영하고 있는 신선호 회장은 신격호와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신철호, 신춘호, 신준호 등 다른 형제들과 달리 사이가 좋다는 이유 때문에 신동주와 신동빈 간의 상속문제에도 꽤나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8녀 신정숙 - 남편 최현열 NK그룹 (CY그룹)

신정숙의 남편인 최현열 NK그룹 회장은 롯데 계열사 사장으로 기업활동을 시작했다. 롯데물산과 롯데캐논 등의 계열사 사장을 지낸 뒤, 1987년 독립하여 본인 사업에 나섰다. 1994년부터 통신관련사업체를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현재는 CY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사명이 변경되었으며, 롯데와의 내부거래를 중심으로 매출을 내는 기업이다. 아들인 최강용에게 회사를 물려준 상태다.

 

9남 신준호 - 푸르밀 회장

신격호 회장과는 20살 차이가 나지만 중간에 관계가 멀어진 신철호를 대신하여 한국 롯데를 이끌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롯데그룹의 한국부문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1996년 신격호의 차명부동산을 정리 및 회수하는 과정에서 신격호에게 돌려주지 않기 위해 소송 전까지 벌였지만, 패소하고 롯데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2007년 롯데우유 사업을 분리하여 나왔으나, 롯데 이름을 쓰지말라고 하여 '푸르밀'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신준호의 사위는 전두환의 딸인 전효성과 이혼한 '윤상현 의원'이다. 그래서 윤상현 의원은 '대통령과 재벌'의 사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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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녀 신정희 - 동화면세점 사장, 남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

신격호의 여동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직접 사업을 하고 있다. 최초의 시내면세점이라는 타이틀로 남편인 김기병 씨와 함께 동화면세점을 운영하였으나, 최근 코로나로 인한 타격으로 자본잠식상태에 놓여있다.

 

남편의 회사인 롯데관광개발은 롯데사와는 관련없이 이름만 쓰고 있는 상태이며, 동화면세점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제주드림타워 복합리조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다.

2020년 사망으로 1대 기업인 시대를 마감한 인물

신격호 회장의 개인 사생활은 별도로 두고 보더라도, 그는 분명 한국 기업사에 대단한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아우르는 대기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분명 대단한 인물이다. 그의 욕망이 없었다면 잠실의 롯데타워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초대 기업총수들에 비해 장수하다보니 2020년 그의 사망은 한국 초대 기업인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껌에서 시작하여 호텔, 음료, 식품 등 거의 모든 소비재의 톱이었던 롯데의 역사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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