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자'라는 말이 더 이상 가벼운 만남이 아닌 요즘, 영화 티켓의 적정 가격은 대체 얼마일까?
현재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극장을 방문할 때 관람요금은 평균 15,000원 선. 2인이 방문한다고 할 때에도 이런저런 할인 수단을 동원해야 간신히 2만 원 대로 관람이 가능한 요즘이다. 최근 영화티켓 가격을 7천 원으로 낮춘다는 말이 있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영화 티켓 가격을 왜 내릴 수 없었는지 살펴본다.
영화 티켓 가격의 변천사 - 5천 원에서 1.5만 원까지
솔직히 제 아무리 영화가 인기가 있더라도 한 국가의 인구 25%가 관람하는 게 쉬울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천 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나온다는 게 엄청난 것이다. 오죽하면 최근 할리우드 프리미어 시사를 한국에서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길까.
이런 현상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한 레저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도 한 몫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성비가 좋은' 문화활동이기 때문이란 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나 코로나 이전 시점까지가 그랬다.
2000년대 초 : 5,000원~7,000원
2000년대에 들어서며 '단관 극장'의 시대가 '멀티플렉스'로 변화하기 시작하던 무렵, 티켓의 가격은 5천 원에서 7천 원 내외였다. 이 당시의 1인 식사가격이 보통 3~4천원이던 시절이기 때문에 영화 티켓은 한 끼에서 두 끼 정도의 식대에 해당했다.
이후 전국 대부분의 극장들이 점차적으로 7천원으로 요금이 조정되었다. 이동통신사 할인이나 조조할인, 심야상영 등을 이용할 경우에는 편당 5천 원 정도로 관람이 가능했다.
이 시기에 멀티플렉스 극장은 쇼핑몰 또는 백화점과 결합하면서 극장은 그 자체로 주요 문화생활 장소로 급부상하였다. 그리고 CGV, 메가박스 등의 업체들은 '특수관'을 통해 서비스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CGV'에서 오랜 시간 프리미엄 영화서비스로 운영하고 있는 '골드클래스' 등이다.
2009년부터: 9,000원
2009년부터는 일반 영화요금 전체가 9천원으로 맞춰진다. 물론 특수관은 더욱 비싸지게 되었고, '영화의 정가'가 9천 원으로 상승한 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9천원이라는 요금인상은 소비자들에게 사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역설적으로 가장 '저렴하게 즐길만한 문화생활'이 또다시 영화였다는 것이다.
이후 약 5년 정도는 특별관 또는 시간대별 차등을 제외하고서 요금이 굳어진다.
2014년부터 본격적인 10,000원 시대
2014년에는 일반적인 주중요금 가격이 만 원으로 오르게 된다.
코로나 시기 - 약 3천원 인상: 13,000원
코로나 시기에는 관객들이 극장을 방문하지 못함에 따라 영화관 사업자들에게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한다. 이후 이 영업손실분을 메꾼다는 명목 하에 코로나 시기에만 30%가량 요금이 인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요금 상승은 코로나 종료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2023년 현재 약 15,000원 까지 요금이 인상된 상황이다.
결국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약 20여 년에 걸쳐 영화티켓의 가격은 약 세 배 가량 인상이 된 셈이다. 물론 다른 생활물가 역시 올랐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티켓의 가격이 더욱 상승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년 간의 변화: Netflix의 등장과 TV의 발전 - 더욱 커져가는 극장 방문 기회비용
20년 간 영화 배급에 영향을 준 가장 큰 두 가지를 꼽자면 바로 넷플릭스와 TV 패널의 발전이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하는 OTT 사업자들이 본격적으로 확장하면서 잠식한 시장이 바로 '대여점' 시장과 '불법 다운로드' 시장이다. OTT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불편하게 대여점을 방문할 필요도 없어졌고,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하며 불법 사이트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더욱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2010년 전후로 TV패널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도 한 몫을 한다. 가정용 TV의 대형화가 이루어지며 집에서 보는 영화도 시각적으로 훌륭해졌다. 이 상태에서 극장 요금의 상대적인 지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극장을 간다는 행위는 문화생활의 일부다. 하지만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관람의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극장 방문의 기회비용이 커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영화관 외에도 비슷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들이 다양해졌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결국 영화관 방문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가격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정보를 참조로 생성한 위의 그래프를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관객들이 지불한 평균 티켓가격이 8,250원을 채 넘지 않는 2019년까지 관객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2012년부터는 연간 2억 명의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다. 극장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대략 한 사람이 1년에 6-7회 이상 극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로 인해 극장관객이 뚝 끊기고 난 이후에는 가격이 비싸짐과 동시에 관객 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사실 2022, 23년의 영화티켓 매출액은 2010년 수준이다. 동원 관객수는 약 30%가량 줄었고, 티켓 가격이 30% 오르면서 매출액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 앞으로의 누적관객 데이터가 더 나와야 확실해지겠지만, 결국 관객수와 티켓 가격이 연동된 양상을 보여준다.
티켓 가격이 올랐다는 시점과 관객 지불 평균가격이 다르다는 점이 보일 것이다. 이 말은 결국 많은 관객들이 여러 할인수단을 이용하여 저렴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티켓 판매금액은 어디로 가는가? 티켓 금액의 분배
아바타2가 한창 관객몰이를 하고 있을 때 작성했던 '영화티켓 수익 분배'에 대한 글을 다시 인용한다.
아바타2 관객 800만 돌파 - 어디까지 갈까?
아바타2 관객 800만 돌파 - 어디까지 갈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2의 관객이 80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람이 멈췄던 가운데, 어디까지 관람객이 늘어날 수 있을지 상당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개봉했던 외
hellyeah.tistory.com
영화티켓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다음과 같은 비율로 분배된다.
영화티켓 매출 | 영화발전기금 | 부가가치세 | 영화관 상영료 | 배급수수료 | 이익배분금액 (영화 제작자, 투자자가 환수하는 금액) |
100% | 2.7% | 10% | 43.6% | 4.3% | 39.3% |
간단히 7천원으로 티켓 가격을 낮추지 못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비율로 매출금액이 정산되기 때문이다. 15,000원인 티켓 가격을 절반 수준인 7천 원으로 낮추게 된다면, 영화관, 배급사 등이 가져가는 절대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그래프를 통해서 볼 때, 관객들의 평균지불금액이 8천원 언저리일 때, 관객 수는 최대를 찍었다. 즉,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는 관객수와 티켓 가격의 최적의 균형점이 약 8,500원에서 9,000원 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옵티멀(Optimal) 값을 찾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분석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절대적인 관객수를 증가시키는 가격대는 적어도 9천 원 전후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현재 극장을 방문하고 있는 연간 관객 수는 약 1억 명 언저리다. 한국 인구로 나눈다고 하더라도 1인 당 약 2회에 불과한 숫자다. 어찌 보면 '매니악한' 극장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련 글 읽어보기
코로나 이후 바뀐 2023년 영화시장 - 덕후들의 세상이 오는가?
최근 탑건 매버릭이나, 슬램덩크와 같은 작품에 대해 '반복 회차 관람'이라는 문화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냉정하게 영화관 비지니스가 현재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가는 사람만 계속 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7천 원으로 티켓가격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절대적인 숫자의 관객을 동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굳어져간다면 영화관 시장은 사실상 갈라파고스가 되어갈 것이다.
최근 영화제작사들이 작품 홍보를 위해 SNS 상에서 다양한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사람들도 충분히 똑똑해져서 이러한 바이럴 마케팅을 '의도적'으로 끌고 가기가 쉽지 않다. 결국 진짜 관객들의 입소문이 필요하다. 이 입소문을 제대로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은? 부담 없이 가볍게 극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