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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기업 총수의 가계도: 조현범과 이재용은 무슨 관계일까?

by 중계붕어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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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총수의 가계도 시리즈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정리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 수 있다. 바로 재벌가의 혼맥이 정말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한국타이어(현 한국앤컴퍼니)의 회장인 조현범과 삼성전자의 이재용 마저도 꽤나 가까운 관계라는 사이가 된다.

 

이 둘이 어떻게 가까운 사이가 되는지 살펴본다. 오늘은 '효성그룹'의 창업주 조홍제 일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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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이병철이 세운 기업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그룹은 한국의 1세대 기업인인 호암 이병철이 창업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병철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도 협동정미소를 운영하는 등 소위 '잘사는 집'의 아들이었다. 그는 1938년 아버지의 도움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농산물과 가공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사업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하다 1948년 서울로 진출하게 된다.

 

1948년 이병철은 사업을 더욱 키우기 위해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오히려 이병철보다 더 많은 출자를 하며 같이 사업을 시작한 파트너가 있었다. 바로 그가 경남 함안의 땅부잣집 아들이었던 조홍제다. 당시 '삼성물산 출자지분은 조홍제가 7, 이병철이 3일 정도였다.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함께 설립한 삼성물산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곧 폐업하였지만, 부산에서 다시 재창업하여 전쟁고철 등을 판매하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 당시 조홍제는 삼성물산의 부사장직을 맡았으며, 이후에는 제일모직 부사장, 제일제당 사장을 역임하며 삼성그룹 초기의 행보를 함께 하였다.

 

더 많은 출자금을 대면서도 부사장으로 합류했던 이유는 조홍제가 이병철의 형 이병각과 친구라 자주 왕래하였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일본 유학을 함께 준비하며 와세다 대학교에 잠시 같이 다닌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이 형 동생하며 지내는 사이기도 했던 셈.

 

조홍제는 자신보다 어리지만 사업가로서 재능을 보였던 이병철을 미리 알아봤던 것 같다. 그는 이런 인연으로 1940년대에 800만 원(2023년 현재 가치로 단순 환산하면 약 800억에 육박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약 2~30억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을 투자하면서도 삼성물산의 부사장으로 취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1962년 이병철의 동업청산 요구에 따라 삼성에서 독립하고 '효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당시 조홍제는 '제일제당'을 받기로 되었지만, 결국 제일제당을 받지 못하고 동업청산금 3억원과 한국타이어, 한일나이론 지분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출자 지분이 7:3이었기 때문에 해당 지분으로 청산하기를 원했지만, 이병철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빛나는 별'이 되겠다는 '효성'을 이름으로 삼고 독립하였으며, 화가 났지만 결국 소송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홍제가 세운 효성 그룹의 간략한 역사

조홍제의 효성그룹은 앞에 서술한 것처럼 '삼성'과 함께 출발한 회사다. 조홍제는 경남 함안의 지주집안에서 태어난 소위 '금수저' 집안의 장손이었다. 당시 이병철의 집안도 잘 살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병철 집안보다도 훨씬 잘 살았다고 한다.

 

1928년 일본 유학길에 오르지만, 기록들을 보면 당시 기초학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간도 용정중학교 졸업장과 성적증명서를 위조하여 와세다 대학교에 입학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이 자퇴하다시피 하였다. 결국 가마쿠라 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한 뒤 '호세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1935년에 공부를 마친다.

 

그 뒤 조홍제는 동아일보 함안지국에서 일하다가 마산세무서와 군북금융조합장에 선출된다. 가만히 보면 돈 많은 집안의 아들이 유학을 마치고 온 뒤, 여러 자리들을 경험한 셈. 이때에 해방이 되었고, 1948년 이병철과 삼성물산을 공동창업한다.

 

1962년 '효성'을 창업한 뒤 1963년에 대전피혁, 1967년에 한국타이어 등의 적산기업들을 알뜰히 챙겼다. 1966년에는 동양나일론을 세우고 1970년에 한일나일론을 인수한다. 합성섬유, 타이어 등을 시작으로 중공업 분야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뒤, 증권사를 비롯한 몸집 키우기를 진행하였다.

 

1978년부터는 조홍제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어 동양나일론을 장남인 조석래에게 맡기고 차남인 조양래에게 한국타이어를, 그리고 대전피혁을 막내 조욱래에게 넘기며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1984년 조홍제 회장이 사망하며 장남인 조석래에게 '효성'의 이름이 전해졌다.

 

조홍제의 가계도: 2녀 3남의 자녀

조홍제에게는 2녀 3남의 자녀가 있었다.

장녀 조명숙, 차녀 조명률 - 각각의 자녀들이 '오원물산'과 '성림'을 세우게 됨.

 

조홍제의 첫째 딸인 조명숙은 전 신한병원 원장이었던 허정호씨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둘째 딸인 조명률은 권병규 씨와 결혼하였다. 두 사위는 모두 조홍제와 함께 일을 했었다. 허정호 씨의 경우에는 '감사'로 이름을 올렸었고, 권병규 씨는 동양나일론의 창립멤버로 활동하다가 효성건설 회장까지 맡았다.

 

조명숙-허정호 씨의 자녀인 허수창은 '오원물산'의 회장이 되었고, 조명률-권병규 씨의 자녀인 권인섭은 성림의 회장이 되었다. 이 두 회사는 효성그룹과 사촌지간으로 서로 지분도 공유하고 있었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서로 간의 지분도 정리된 상태. 

 

장남 조석래 - 효성그룹 명예회장

아버지 조홍제 사후 동양나일론을 비롯한 주요 업체를 상속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효성그룹 전체를 이끌었으며, 현재는 효성그룹의 명예회장으로 있다. 현재 그의 큰아들 조현준과 막내아들 조현상이 효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조석래의 둘째아들이 그 유명한 '조현문'이다. 신해철과 함께 대학교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던 무한궤도 팀의 멤버였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음악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조현문은 이후 하버드 로스쿨로 진학하고 변호사활동을 하던 중 효성그룹 경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2014년 당시 효성그룹의 내부비리를 고발하며 효성그룹을 초토화시켰던 인물. 내부고발 사건 이후 그는 효성지분을 모두 털고, 호주에 거주하고 있다.

 

차남 조양래 - 한국타이어 명예회장

조홍제의 차남이 지난 번에 소개했던 조양래다. 현재 한국앤컴퍼니의 지배구조 문제로 연일 기사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조양래의 가족은 아래 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기업 총수의 가계도: 조양래 한국타이어 일가

 

기업 총수의 가계도: 조양래 한국타이어 일가

기업 총수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산업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한국타이어를 맡았던 조양래의 일가를 살펴본다. 사실 그의 아버지인 '조홍제'가 효성그룹의 창업주로 삼성의 이병철,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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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홍제가 살아있을 당시부터 한국타이어를 담당하였으며, 조홍제가 건강 때문에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한국타이어를 본인이 확실히 챙기게 되었다.

 

삼남 조욱래 - DSDL 회장

그는 위 형제들보다 비교적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아들이다. 그래서 조홍제가 애지중지했던 자식이라 알려져 있다.

 

1979년 조홍제의 부름으로 한국으로 귀국하여 대전피혁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이후 대전피혁공업 사장이 되었고, 효성기계공업과 효성금속을 담당하게 된다. 1996년에는 본인에게 주어졌던 대전피혁공업이 효성기계공업과 통합되었지만, 1997년 IMF 당시 효성기계가 부도나면서 DSDL의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두 형제에 비하여 굉장히 조용한 경영을 하고 있어서 사실상 알려져 있는 정보는 거의 없는 편이다.


이병철과 더불어 삼성을 창업하였고, '더 빛나는 별'이 되겠다며 효성을 창업했던 만석꾼의 아들 조홍제는 대한민국 1세대 기업인 중 가장 일찍 사망하였다. 1984년 사망한 이후, 그가 성장시킨 효성은 효성그룹과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그리고 DSDL로 분리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조홍제의 히스토리를 보다보면 이병철의 삼성이 결코 혼자 만들어진 것은 아니란 점을 알게 된다. 조홍제와 이병철이 사이좋게 청산하였다면 동네 형동생처럼 지내는 이재용과 조현범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홍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말했었다. 이병철에게 소송을 하며 기력을 소진하지 않은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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