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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총수의 가계도 : 한진그룹 2대 회장 조양호의 형제들

by 중계붕어 202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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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총수의 가계도 : 한진그룹 2대 회장 조양호의 형제들

 

지난 글에 다루었던 한진그룹의 창업자 조중훈 회장은 다섯 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조중훈 회장은 1990년대부터 각 분야로 나누어 자녀들에게 담당 업종을 분할시켰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전 특수로 엄청난 성장을 하였던 한진그룹은 항공과 해운을 중심으로 하는 대부분의 사업을 영위하였으며, 순수 제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에 손을 뻗었습니다.

 

한진그룹의 2대는 조중훈 회장의 자녀들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그중에서 핵심이 되는 한진그룹의 본체는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이어받았습니다.

조중훈 회장과 그 자녀들 (왼쪽부터 4남 조정호, 3남 조수호, 장남 조양호, 차남 조남호)

한진그룹 2대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의 2대 회장을 물려받은 것은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미국 유학으로 글로벌 감각을 쌓고, 한국에서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후 군복무를 하며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업무를 시작하였고, 1992년 대표이사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실질적으로 한진그룹의 2대를 이끌며 아버지인 조중훈 회장이 사망한 2002년까지 대한항공을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대한항공의 운영에 있어서는 글로벌 톱 수준의 평가를 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스카이팀 결성 및 서비스 완성도 면에서는 디테일하게 지시하고 만들었을 정도로 호평이 자자합니다.

 

한진그룹의 아픈 손가락이라 할 수 있는 한진해운도 비록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조양호 회장의 경영능력과 별개로 외부환경의 변화로 인해 한진그룹의 경영은 2010년대 이후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조양호 회장은 2015년 약 2조 원에 달하는 S-OIL의 지분을 매각하는 등 경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였지만 점차 경영권에서 밀려나는 분위기 속에서 2019년 폐질환으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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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의 계열분리 - 형제의 난

조중훈 회장은 1990년대부터 계열사들을 자식들에게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4형제에게 적절한 계열분리를 하고 합심하여 운영하라는 의미였죠. 조양호 회장에게는 한진그룹과 대한항공 등 핵심 물류를, 조남호에게는 한진중공업을, 조수호에게는 한진해운을, 마지막으로 조정호에게는 한진투자증권 등의 금융기업을 분할하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조중훈 회장의 사망 이후, 형제 간의 다툼이 불거지기 시작하였고, 이 결과 형제의 난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한진그룹은 완전히 네 개의 별개 회사로 찢어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남 조양호 - 한진 및 대한항공, 한진고속

장남 조양호가 경영을 맡게 된 곳은 한진과 대한항공 그리고 한진고속이었습니다.

 

세 가지 업체 모두 '물류'에 집중된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조양호 회장이 경영을 맡게 된 이후, 한진고속을 동양고속에 매각하였습니다.

 

한진그룹의 경영에 집중하고 있었던 조양호는 2006년 조수호의 사망 이후 경영부실로 추락한 한진해운의 경영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수인 최은영 회장의 경영권을 넘겨받고 2조 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진해운의 파산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조양호 회장의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진에어 등 성공적인 확장과 더불어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으나, 앞서 서술했던 외부적인 불황 상태에서 사망하며 아들인 조원태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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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조남호 - 한진중공업 (현재 한진중공업홀딩스)

차남인 조남호는 한진중공업을 맡았습니다.

 

조선업을 영위하는 한진중공업과 건설을 맡는 한진건설을 포함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조중훈 회장 사망 후, 유언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해 조양호 회장과 법정싸움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조양호 회장과는 완전히 결별한 상태로 지냈으며, 같은 '한진'이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이나 진에어를 이용할 경우 출장비를 지급하지 않는 등 극심한 대립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인해 한진중공업은 파산에 이르게 되었고, 중공업분야는 동부건설 컨소시엄으로 매각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해당 분야는 HJ중공업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한진그룹 또는 한진중공업홀딩스와 관련 없는 회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진중공업홀딩스는 골프장 운영 및 대륜가스 등 도시가스 공급 관련 일부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양호 회장 사망 이후, 가족 간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남 조수호 - 한진해운 (현재 상장폐지)

삼남인 조수호는 해양 물류를 담당하는 한진해운을 맡았습니다.

 

한진해운은 1977년 조중훈 회장 당시 컨테이너 전용 선사로 설립하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중동, 미국, 유럽 등 다양한 항로를 개척하며 국내 1위, 세계 7위까지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1995년에는 거양해운, 1997년에는 독일의 DSR-Senator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1997년 IMF의 여파로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2002년 조중훈 회장의 사망과 2006년 이를 물려받았던 조수호 회장의 사망으로 인해 경영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 체제로 운영을 이어갔으나, 경험이 없는 미숙한 운영과 더불어 2008년 금융위기가 겹치며 빠르게 몰락합니다. 최은영 회장은 사실상 회사의 파산으로 직행한 장본인이었으나, 본인의 퇴직금으로 50억에 이르는 금액을 수령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의 회생을 위해 경영권을 넘겨받고 S-OIL의 지분 2조 원을 매각하여 투입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 한진해운의 파산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남 조정호 - 메리츠금융지주

조중훈 회장은 막내인 조정호 회장에게 금융사업을 분리하였습니다.

 

조정호 회장의 계열분리 당시 그룹 자산은 약 3조원이었으나, 현재는 100조 원 대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1973년 한일증권으로 시작되었고, 1990년 한진투자증권으로 개명하였습니다. 2000년에 메리츠 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하며 한진계열에서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조양호 회장이 경영능력에서는 탁월했지만, 외부 사정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 관련 갑질 논란에 휩싸였고 한진중공업과 한진해운이 사라지는 등의 결과와 정반대로 탁월한 경영실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조정호 회장의 경우 2025년 기준 한국에서 이재용 삼성 회장을 제치고 한국 억만장자 순위 1위에 랭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보유재산은 약 90억 달러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화 12조 원가량)

 

다른 형들과 마찬가지로 조양호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그의 사망 이후 빈소를 방문하는 등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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