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 전쟁 이후 남북한으로 갈라진 한반도, 하지만 국제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한반도 주변국가 중에 통일을 바라는 나라가 딱히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통일만을 기다리는 외국인들이 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통일을 바라는 분들이라는데 왤까? 바로 채권 대박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게도 채권이란 게 있다, 아니 있었다.
북한이 남한보다 6년이나 앞서 컬러 TV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뒤 역사적 자연재해로 꼽히는 1959년 '사라 태풍' 당시에도 남한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 기본적으로 공산권 국가들의 도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만들어 놓은 중공업 공장들이 대부분 북한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북한은 남한과의 경쟁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우방인 소비에트 연합이나 중국 공산당부터 차관을 열심히 들였다. 거기다 서구권 은행들로부터 돈도 빌렸다. 도입한 차관과 은행에 빌린 돈도 1970년대 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정치적 한계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점차 엉망이 되고, 북한은 당당하게도 돈을 안갚기 시작한다. 전체 규모는 한화로 수 조원 단위가 되었지만, 1984년 북한은 '디폴트' 선언을 하였다. 한국 역시 북한에 쌀을 보내거나 경수로 사업 등 3조 원에 달하는 재화를 빌려주었지만 2007년 '아연' 28억 어치의 현물 외에 돌려받은 것이 없다.
북한과 다른 국가 간의 거래는 '디폴트' 선언 이후로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그냥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쌓이고 쌓인 북한의 채무는 30여 개 국에 140억 달러, 약 15조 원에 이른다. 북한이 발행한 채권들이나 빌려준 기록들은 사실상 이미 '손실'처리가 되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휴지조각을 돈으로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1997년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는 북한이 '먹튀한' 채권들을 모아서 만기와 이자가 없는 상품을 만들었다. 이 상품은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고 있는데, 정식 명칭은 북한채권 자산유동화 상품인 '북한부채기업'이다. 이 상품은 3억 1,000만 마르크와 2억 3,000만 스위스프랑으로 발행되어 있다. 전체 금액은 한화 5,000억 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현재 세계에서 거래된다고 하는 '북한채권'은 바로 이 상품을 말한다. 왜냐하면 북한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사게 된다면 북한의 금융활동에 자금을 대주는, 다시 말해 대북금융제재를 위반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채권의 현재 시세, 그리고 미래?
'북한채권'은 BNP가 발행한 NK Dept Corporation 채권으로 1997년 발행되어 거래되었다. 액면가는 1달러지만, 거래 시세는 겨우 1-2센트 수준으로 사실상 가치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2020년 3월을 끝으로 더 이상 연장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만기를 계속 연장해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별 문제가 없었다면 2020년에도 연장되었겠지만 사실상 더 이상의 연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이제 연장의 의미는 없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그냥 가지고 있기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상품은 거의 거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상품은 로이터 통신의 금융지 IFR(International Finance Review)를 통해 부정기적으로 가격이 고시되는데, 고시되었던 거래희망 가격은 약 0.7센트 수준이었다고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거나, 북한 붕괴와 관련한 사건이 발생하면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1달러짜리가 99% 소멸한 상태라면, 굳이 이걸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채권이라는 것은 결국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그래서 돈을 빌린 사람이 돈을 갚겠다고 선언만 한다면, 그 채권은 휴지조각에서 금덩어리로 변신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당연히 북한이 돈을 갚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겠지만, 북한의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그럴 일은 없다. 아주 혹시나 하는 가능성은 바로 통일이 될 경우 통일한국 정부가 갚는다는 것이다. 과연 통일한국은 이걸 갚아야 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통일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북한을 대등한 국가로 인식하고 통일을 하게 된다면, 채권에 대한 의무도 통일한국이 승계하여 갚긴 갚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북한과의 관계는 '한국 영토를 점령한 괴뢰단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이 되었을 때에도 이러한 논리로 무시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있진 않을 것이다. 결국 가장 가능성 있는 형태는 통일한국이 적당하게 채무를 탕감하여 갚는 형태에 가까울 것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꽤나 피곤해질지 모르는 북한채권 - 청나라 채권 꼴이 날지도?
조지 소로스의 파트너였던 짐 로저스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투자 전문가다. 그는 앞서 이야기 했던 북한채권에도 꽤 많이 투자했다고 밝혔었는데, 그가 채권을 산 이유는 당연하게도 통일된 한국이 채권 권면금액을 갚을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한국사람들 보다도 더 열렬한 통일 추종자일지도 모른다.
짐 로저스 외에도 BNP 북한채권 상품을 산 사람들 모두 이런 대박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총 투자한 금액은 얼마나 될까? 5,000억에 달하는 발행액이 99% 할인되어 판매되고 있으니, 결국 약 50억 원 정도다.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푼돈으로 장난을 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은 돈이 통일이 된 후 꽤나 피곤한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생기기 전, 마지막 국가였던 '청나라'는 1911년 중국 철도건설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 바 있다.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이 채권은 휴지조각이 되는 듯했지만, 1987년 홍콩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약 352억의 청나라 채권을 중국이 상환한 바가 있었다. 그로 인해 이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한 들썩거렸는데, 약 20년 뒤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압박카드로 청나라 채권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청나라 채권을 들고 있는 채권자들에게 중국 정부가 약 1조 6천억 달러를 갚으라는 압박을 했던 것이다. 물론 중국은 이를 거절했지만, 미중무역전쟁 당시 상당한 압박카드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휴지조각에 불과한 북한채권이지만, 이게 어쩌면 통일한국에 남겨진 미래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갚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할까? 짐 로저스가 대박을 꿈꾸고 있을 때, 우리에게는 꽤나 큰 고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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