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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누가 될까? 역사로 살펴 본 정치의 변화

by 중계붕어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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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누가 될까? 역사로 살펴본 정치의 변화

 

대통령 선거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이번 대통령은 누가 될까요? 어대명이라 불리는 이재명일까요? 아니면 다시 돌아온 김문수일까요? 역사로 한 번 뒤져보겠습니다.

정치: 권력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

정치에 대해서는 수 많은 학자들이 정의를 내리곤 합니다만, 딱히 와닿는 내용은 없습니다.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이라는 정치학자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고 표현하였고,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단어를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사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권력투쟁이라 할 수 있죠.  결국 권력을 가지게 되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자녀들의 현재생활 - 문준용, 문다혜

전두환 전 대통령 자녀들의 현재 생활 - 전재국, 전재용, 전재만, 전효성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녀들 현재 - 김은철, 김현철

노무현 전 대통령 자녀들의 현재 생활 - 노건호, 노정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녀들 현재생활 - 이주연, 이승연, 이수연, 이시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녀들 현재생활 - 자녀가 없어 주변 인물 근황 (최순실, 정유라)

역사 속에서의 정치: 권력의 근원이 힘에서 정신으로 변화한다.

태초의 정치라는 것은 별 게 없습니다. 그저 '힘의 격돌'이 전부입니다. 힘이 센 자가 모든 것을 갖기 때문에, 정치는 곧 '공포심'을 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면서 이 형태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한 사람의 육체적인 힘이라는 것이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덩치도 좋고 힘도 센 사람이 한 번 등장할 수는 있지만, 그도 늙고 병들고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힘을 기르고 단련을 하더라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의 '힘'이라는 것이 '집단'으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합쳐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적'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공격이라는 개념에 자신의 세력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추가되기 시작합니다. 정치가 '집단화' 되기 시작하죠.

 

근데 이런 물리량으로 격돌하는 것에 한계가 슬슬 찾아옵니다. 죽음을 각오하며 싸우는 것도 쉽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그다음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근원적 공포를 이용한 정치입니다. 그냥 '복종해야 하는 대상'을 만들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역사에서는 이를 왕이라고 불렀죠.

이런 형태로 나타난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왕'이라는 것입니다.

 

왕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바로 영웅담입니다. 그에 대한 경외감과 공포심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죠. 수많은 적들과 싸워낸 영웅담을 만들어내고, 후손과 혈통 등을 강조하며 무조건적인 권력을 형성해 나아갑니다.

 

또한 왕에게 도움이 되었던 친구들을 '귀족'으로 만들고, 이들과도 혈연관계 등을 만들면서 권력집단의 규모를 키워갑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그 귀족들 사이에서도 '친구'였던 기억은 잊혀가고 권력 투쟁이 또 반복되었죠.

 

그런데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종교'라는 것이죠.

가장 근원적인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볼모로 삼은 종교입니다.

 

종교는 '왕'과 '귀족'이라는 공고한 시스템을 단 하나의 질문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죽고 난 뒤의 세계에서도 그럴까?

 

원래 종교의 가르침이 어찌 되건 상관없이, 사람들의 심리에는 종교가 자리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권력이 강한 왕마저도 종교와 힘겨루기를 하게 되죠.

 

실제 육체적인 힘으로 정치를 하던 인간은 결국 정당성이나 공포심을 이용하여 컨트롤하는 법을 익혀갑니다. 이때까지의 정치는 사회의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근대 정치의 변화: 권력, 왜 저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왕과 종교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시대가 한참 흐르면서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의문이 생기게 된 것은 '화폐'와 '과학' 때문이었습니다.

 

화폐라는 것은 국가 내에서 재화를 통용하기 위한 거래수단입니다. 국가라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아주 효율적인 도구죠. 국가는 화폐에 대한 보증을 해주면 되고, 이를 통해 세금을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화폐를 모으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곧 '경제활동'이 됩니다.

 

무언가를 만들고 벌어들이는 활동을 하다 보면 '도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가만 앉아서 땅값과 세금을 받아가는 귀족들과 왕족들이 보이죠. 그런데 내가 미친듯이 돈을 모아도 '귀족'이 될 수 없다는 본연적인 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권력'과 '자본'이 비대칭한 상태에 있었죠.

 

과학의 발달도 종교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합니다. 종교가 말하던 공포스러운 대상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씩 베일이 벗겨지자, 더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대체 왜 저들에게 권력이 있지?

 

돈도 내가 더 많고, 내 돈으로 이 나라가 굴러가고 있는데 왜 나는 아무런 권력이 없는 거지? 사람들은 이 의문을 계속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났고, 왕정이라는 시스템이 차례차례 붕괴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직접 지배한다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어 현대에 이르게 됩니다.

현대 정치의 방향: '나'로 시작하는 정치

19세기 권력과 자본의 극심한 비대칭은 결국 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로 자본과 권력은 최대한 같은 쪽으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20세기에는 '혈통'과 같은 정당성이 아니라, 국가에 세금을 더 납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죠. 국가라는 시스템이 '세금'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언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고요.

 

하지만 모두가 1표를 가지고 있다는 약속을 이용한 새로운 정치도 등장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죠. 즉, 세금의 사용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향하게 하여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는 방법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의 발달은 이를 더욱 빠르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당성'이라거나, '대의'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관심이 더욱 중요하죠. 이미 현대 정치는 국가와 개인이 동일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투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독재정권이 오랜 시간 자리하다 보니 이제야 그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익'의 총합이 결국 국가의 방향으로 결정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의 방향은 어디로 갈까요? '개인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이를 실현하는 후보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킨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잘 사는 대한민국'과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후보가 아니라, 마치 '나를 타깃으로 한'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대가 열렸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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