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숙청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하에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야권의 히어로로 등장했던 김영삼은 26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계에 진출했던 인물이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으로 꼽히고 있다.
군사정권에 맞선 젊은 엘리트 이미지로 김대중과 함께 야권을 이끌던 젊은 실력파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치러진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과의 단일화가 실패하며 둘 다 당선되지 못하고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후 1990년에 노태우, 김종필과 3당 합당을 진행하고, 당시 민주투쟁을 함께 이끌던 동료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박정희의 처남인 김종필과 박정희의 부관이었던 노태우와의 합당이 당의 민주화 정신과 맞지 않고, 기존 군사정권과 영합하는 행위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 3당 합당을 반대했던 모습으로 유명했던 인물이 훗날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 의원이었다.
김영삼은 이후 14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군인 출신이 아닌 정부라는 의미에서 '문민정부'라는 이름을 붙였고, 기존 비리를 척결한다는 명목 하에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행하였고, 군 내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단번에 숙청해 버렸다.
임기 말 닥친 IMF사태로 인해 평가가 갈리긴 하지만,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숙청은 그의 탁월한 치적으로 평가받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녀들
김영삼은 2남 3녀의 자식을 두었지만, 이 중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무런 보도 없이 지내고 있다.
장녀 김혜영, 차녀 김혜정, 막내 김혜숙
세 딸들은 모두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삼의 대통령 취임식 때와 영결식 때만 얼굴을 드러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야권 지도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이 어려워 일찌감치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장녀 김혜영 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재직 중인 이 모 씨와 결혼하였으나, 직장에서 "야당 총재의 사위가 회사에 있다는 점이 불편하다"며 퇴사를 권유받아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차녀 김혜경 씨와 막내 김혜숙 씨는 모두 이화여대, 성심여대(현 가톨릭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교포와 결혼을 하고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남 김은철 - 비운의 황태자, 현재 지병을 앓고 있다가 2024년 8월 7일 오전 별세
김은철의 경우 김영삼이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었던 1982년 결혼을 했다. 신군부는 김영삼의 결혼식 참석을 허용했지만, 김영삼은 '아버지이기 이전에 정치인으로서 참여할 수 없다'라고 거절하였다.
한국의 정서상 가정의 중대사에 해당하는 자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결단을 내린 셈이었다. 이후 김은철은 미국으로 떠나 은둔하다시피 살았으며, 주변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가 김영삼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 생활에 열중하고 있으며, 별도의 노출을 하지 않고 있다.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만 있을 뿐이다. 그의 동생인 김현철과 비교하여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수정>
김은철씨는 2024년 8월 7일 오전 6시 40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남 김현철 - 소통령, 최초로 임기 중 구속된 아들
대통령의 가족들은 많은 비리에 연루된다. 보통 자녀들의 경우 아버지의 권력을 바탕으로 '왕자, 공주' 대접을 받으며 떵떵거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은 이를 넘어 본인이 '소통령'으로 지냈던 인물이다.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가 미국 유학 후, 1984년부터 쌍용투자증권에 재직하고 있었다. 1987년 아버지의 대선출마에 퇴사를 하고 여론조사팀을 꾸려 김영삼의 선거전략을 짰다. 여론조사의 퀄리티가 좋아 김영삼도 매우 신뢰했다고 한다.
1992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본인의 여론조사팀을 싱크탱크로 활용하면서 정부의 비선실세로 군림하였다. 사실상 대통령 허가권이 닿는 대부분의 업무에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인사권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가 주요 인사를 대부분 먼저 보고 받고 아버지에게 결정하도록 올리는 역할을 하였고, 이를 우려한 주변의 비판자들까지 모두 밀려닸다고 전해진다. 실력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넘어서는 권한까지 휘두르기 시작했던 셈이다.
이후 IMF의 도화선으로 꼽히는 한보철강 사태에서 허가를 해준 '몸통'으로 지목받고,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로 인하여 김영삼의 정권 말기는 어수선하게 흘러가기 시작하였고, 그의 치적들은 김현철에게 많이 묻혀버렸다.
그는 1999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고, 아버지와 같은 정치인으로 활동하려고 하지만 삐그덕 거리고 있다. 여의도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기도 했지만, 보수 진영에서도 특별히 챙겨줄 만한 이유가 없어서 국회의원 공천을 받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고,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 후 민주당에 입당하여 활동하다 2019년 탈당한다.
현재는 20대 국민의힘 경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면서 윤석열계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아들 김인규 씨는 2021년 8월 윤석열 대선캠프에 청년정책 담당으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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